사회 사회일반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퇴사하겠습니다"..퇴준생 늘어간다

신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7 09:02

수정 2018.04.07 12:06

어렵게 취업 성공해도 얼마 못 가 그만두는 직장인들
퇴준생 많아지자 '퇴사학교', '월간퇴사' 등 입소문 타
고용한파로 재취업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오래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오래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3년차 직장인 조용인(가명·30)씨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사표를 냈다. 이유는 '스트레스'로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퇴사를 결정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7.7%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보다 2.5%P, 2012년 보다 4.1%P 증가한 수치다.

또한, 직장인 93%는 이직을 고민하는 '커리어 사춘기'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커리어 사춘기를 겪는 이유로 '너무 낮은 연봉' 이 1위(49.8%)를 차지했다. 이어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서'(35.3%), '너무 많은 업무량'(27.0%), '고용 불안정성'(25.1%) 순으로 나타났다.

■신조어 '퇴준생' 등장
최근에는 취준생(취업 준비생)에서 파생된 신조어 '퇴준생(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이 생겼다.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정하기보다 회사에 다니며 천천히 준비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가려는 인식이 확대된 탓이다.

13편의 퇴사 이야기가 실린 잡지 '월간퇴사'와 퇴사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는 이미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고 있다. 현명하게 직장 그만두는 것을 도와주는 '퇴사학교'에 문을 두드리는 퇴준생도 많다.

'퇴사학교'는 삼성전자를 퇴사한 장수한(32)씨가 '퇴사를 현명하게 준비하자'는 명분 아래 차린 교육 프로그램이다. '퇴사학개론', '이직학교', '퇴사방지단' 등의 수업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수강생만 지금까지 5000여명에 달한다.

직장인 송예슬(31)씨는 "사실 퇴사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지만, 당장 할 일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다"며 "최근에는 책, 강의, 팟캐스트 등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퇴사 후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2017년 퇴사 신드롬을 일으킨 책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를 결심한 순간 일이 더 재밌어졌다고 털어놨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지내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살았지만, 퇴사 후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10년 넘게 퇴사를 준비한 그녀의 이야기는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퇴사하겠습니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는 절박한 선택일까, 위험한 용기일까?
'백수의 꿈은 취업, 직장인의 꿈은 퇴사'라는 말이 있다. 꿈을 이룬 직장인에게 퇴사는 절박한 선택이었을까, 위험한 용기였을까.

직장인 김현정(29)씨에게 퇴사는 절박한 선택이었다. 불합리한 기업문화와 답답한 위계질서 속에서 직장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첫 출근을 하던 날부터 퇴사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던 것 같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텃세에 일을 떠넘기려고만 하는 상사의 태도에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퇴사자들이 말하는 퇴사 이유의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시나 '인간관계'다. 대한민국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상사나 동료로부터 협박과 모욕, 따돌림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0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만 20~50세 미만 근로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에 따르면 66.3%의 직장인이 과거 5년 간 직접적인 괴롭힘 피해 경험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간접경험(목격·상담) 비율도 80.8%로 나타났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협박·명예훼손·모욕 등 ‘정신적인 공격(24.7%)’이 가장 많았다. 또 ‘과대한 요구(20.8%)’, 소외·무시 등 ‘인간관계에서의 분리(16.1%)’, 잔심부름 등 ‘과소한 요구(10.8%)’ ‘신체적인 공격(2%)’ 등이 뒤를 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서기 위해 위험하지만 용기를 내는 퇴사자들도 있다. 직장인 손영인(가명·33)씨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해 줄곧 공학계열 회사에서 일했지만 마음 한 켠에 항상 갈증이 있었다"며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 퇴사도 돈이 있어야.. 재취업 고민은 여전히
'퇴사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당장 먹고 살기가 급급하기 때문에 '월급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

학원강사 송모씨(가명·31)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갚아야 할 학자금과 카드빚을 생각하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며 "퇴사하면 또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힘들게 빠져나온 터널을 왜 다시 들어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재취업 시장에 불고 있는 고용한파도 무시하지 못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퇴사한지 1년이 넘었음에도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한 실업자 비율이 지난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전체 실업자 8만4000명 중 30%인 26만2000명이 1년이 지나도록 새 직장을 찾지 못한 '1년 이전 취업 유경험 실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역시 퇴사 전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브릿지컨설팅 이직연구소 다이엘 박 대표는 "퇴사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매일 매일 견뎌야 하는 시간이 꽤 힘들 수 있다"며 "성공적인 퇴사자는 퇴사 후에도 사회에 공헌하면서 동시에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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