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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해외 대기획 3탄] 몸만 쑤셔도 공짜진료 받는 사람들…병원선 의사 부족해 5시간씩 대기

이태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5 16:43

수정 2018.04.05 16:43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 아르헨티나, ‘무상 복지’에 몸살 앓는 의료·교육 현장
붕괴된 의료시스템, 보험증 없어도 무료.. 이민자 급증
간호사 1명이 환자 20명 돌보기도
질 낮아진 교육현장, 대학교까지 등록금 한푼도 안들어
교사들 임금시위 가느라 수업 빠져
지난달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위치한 국립두란병원에서 만난 에미르씨가 4시간째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조카는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지난달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위치한 국립두란병원에서 만난 에미르씨가 4시간째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조카는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이태희 남건우 기자】 "5시간을 기다렸다고요."

지난달 부에노스아이레스시 국립두란병원. 한 30대 남성이 진료실 문이 부서질듯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연신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초조해할 뿐이었다.
바로 뒤에 서있던 40대 여성은 배를 움켜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눈은 질끈 감은 채 고통을 견디는 듯 보였다.

국립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웬만한 진료는 모두 무료로 치료해주니 작은 통증이나 가벼운 질병에도 일단 병원을 찾는다.

조카 목에 혹이 생겨 병원을 왔다는 에미르씨(41)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에미르씨는 "보통 3~4시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진료도 못 받고 간 적도 있으니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진도 늘어나는 환자 수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병원 안에서 마주친 한 의사는 기자라는 신분만 밝히고 질문을 채 건네지도 않았는데 "환자들 관리 하려면 지금 의료진 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만 남긴 채 어디론가 뛰어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초.중.고 통합 국립학교) 앞에서 등교를 앞둔 초등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남건우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초.중.고 통합 국립학교) 앞에서 등교를 앞둔 초등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남건우 기자


레지던트 2년차인 헬렌씨(28)는 "그나마 두란병원은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병원이라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전에 일했던 지방 병원은 간호사 1명이 환자 20명을 돌봤고, 필수 약품이 모자라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털어놨다.

아르헨티나 전국 8000여개 국립 의료시설에서는 보험증이 없어도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인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오는 이민자가 늘고 있다. 병원 의료진과 약품 부족 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무상복지로 인한 문제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발생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등록금 한 푼 받지 않고 지원하다 보니 교육 서비스 수준이 떨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중심지에 위치한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초.중.고 통합 국립학교)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오전 8시에 등교해서 12시면 하교한다. 불과 4시간 밖에 되지 않는 수업시간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한 초등학생은 "기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인사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있는다"며 "그럼 우리는 그냥 자습을 시작한다"고 털어놨다.

선생님들의 학력수준도 문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간단한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교사 자격증이 주어진다.

학부모들은 불만이 많다.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다는 까를라씨(37.여)는 "선생님이 임금 시위를 벌이러 가느라 학교를 빠지는 분들도 많다"며 "듣기로 한국 학생들은 경쟁이 너무 심해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한다는데, 우리는 너무 나태하게 공부를 시켜 또다른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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