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년들의 희망 꺾는 '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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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명문대 출신에는 가산점이 붙고, 남성 지원자를 더 우대한다는 등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카더라'로만 떠돌았던 이야기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최근 줄이어 파헤쳐지고 있는 은행권 채용비리 백태를 보면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10여년 전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할 때가 떠오른다. 최종 면접에 들어갔는데 나를 제외한 지원자들이 소위 국내 최고 명문대라는 S대 출신이었다. 면접관들의 첫 질문이 "S대 출신이네요"였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경쟁자들의 학벌을 알 수가 있었다. 유일하게 S대 출신이 아니었던 내게 돌아온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OO 출신이네요"라며 내 출신 지역을 언급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많은 곳의 면접을 봤지만 최고의 굴욕감이 들었던 기억이다. 만약 내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한 개라도 했다면 그렇게까지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기억은 입사 지원과정 내내 품었던 의심 한 가지다. 면접전형에 가보면 분명히 여성 지원자가 많지만 최종 합격자는 남자가 더 많거나, 비율이 비슷하게 맞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그들이 면접에서 월등했다면 수긍했겠지만 토론이나 집단면접으로 진행될 경우엔 합격과는 멀어 보이는 동문서답을 한 지원자도 최종 합격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채용 결정은 회사 몫이었기 때문에 '내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됐으니 돌이켜보면 내 인생 중 가장 자존감이 낮은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매번 '나는 왜 이렇게 무능력한가'라는 자아비판에 빠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를 결코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오늘도 내가 부족하다는 자책감으로 힘들어하는데 사실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불공정한 채용비리를 저지른 회사의 문제로 밝혀지니 얼마나 허탈할까.

취업 준비에 한창인 사촌동생은 "요새 뉴스를 보면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탄식했다. 청년들의 의지를 꺾고 희망을 버리게 하는 채용비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만들어질 기회가 되길 바란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금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