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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고용부, 영업기밀 공개 결정 철회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8 16:51

수정 2018.04.08 16:51

삼성전자 등 행정소송 제기.. 보고서 부분 열람이 바람직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영업기밀 공개를 막아달라며 각각 지난달 26일과 지난 2일 수원지방법원 등에 행정소송을 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말 삼성디스플레이의 탕정 공장과 삼성전자의 기흥.화성.평택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키로 한 게 발단이다. 산업재해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보고서엔 장비배치도와 공정흐름도, 쓰이는 화학재료 등이 나와 있다.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는 지난 2월에도 공개 결정이 내려진 적이 있다. 대전고등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 공장의 보고서를 유족에게 공개토록 했다.
고용부는 대전고법 판결 이후 작업보고서를 적극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핵심 공정을 맡은 화성·평택 공장 보고서가 공개되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생각해볼 일이다. 반도체 재가공.포장을 담당해온 온양 공장과는 차원이 다르단 얘기다. 반도체는 공정 자체가 핵심 기술이다. 장비 숫자나 배치 순서, 화학약품 이름 하나하나가 영업기밀이다. 디스플레이 역시 장비 배치와 재료 배합을 뜻하는 '레시피(공정작업 내용)'가 핵심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장비 배치도와 재료 목록만 봐도 제조비법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보고서를 공개하면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쟁국가들이 덕을 볼 게 뻔하다. 특히 중국은 국내에서 유출된 기술로 기술 격차를 좁혔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유출된 국가핵심기술 중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2012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 기술이 유출되자 중국 현지업체들은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7%까지 올렸다. 지난 2014년 2차전지 기술이 유출되자 BYD 등 현지기업 매출은 전년 대비 220% 늘었다. 중국은 지난 2014년 1200억위안(약 21조원)의 국부펀드를 조성하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중국은 현재 10%대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중국제조 2025년' 계획을 추진 중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지난 6일 고용부 결정에 대해 "우리의 20년, 30년 노하우가 들어 있는 보고서를 공개하면 안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용부 결정을 철회하라는 글이 10건 넘게 올라왔다. 고용부는 지금이라도 보고서 공개 결정을 철회하기 바란다.
산재 피해자를 위해서라면 보고서를 부분 열람토록 하면 될 일이다. 한국은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돼가고 있다.
정부가 영업기밀 공개까지 나선다면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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