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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해주면 추천서 작성’ 교수 발언은 성희롱”..대법, 성희롱 심리 원칙 첫 제시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3 06:00

수정 2018.04.13 06:00

일반인 기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성적굴욕감 심리해야
“‘뽀뽀해주면 추천서 작성’ 교수 발언은 성희롱”..대법, 성희롱 심리 원칙 첫 제시


추천서 작성을 부탁하는 여학생에게 ‘뽀뽀해 주면 만들어 주겠다’고 발언한 것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히 이번 판결에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혐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실질적 가치)을 판단할 때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 등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성희롱 사건의 심리 원칙을 처음 제시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 속에 성희롱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각종 사회적 혼선과 논란을 가라앉히는 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뽀뽀’ 발언 성희롱 여부 하급심 엇갈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장모씨가 “해임을 취소해달라”며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장씨는 2015년 4월 여학생에게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등 학과 소속 여학생들에게 반복해 성희롱 및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장씨는 해임처분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1심은 장씨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학교 측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장씨 발언을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장씨가 평소 소속 학과 학생들과 격의 없이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거나 가족 이야기, 연애상담을 나누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A씨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장씨는 장애인 방문교육 아르바이트 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장애인 아동들을 가끔 안아주고 뽀뽀도 해줘야 하는데 가능하냐'고 말한 뒤 '우리 조카들은 고마우면 나한테 뽀뽀를 하는데 너희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진술했다"며 "평소 학생들에 대한 태도에 비춰 대화 문맥에 관한 교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해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진술 증거가치 판단 때 2차 피해 불안감 고려돼야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장씨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성희롱 행위가 학교 수업이 이뤄지는 실습실이나 교수 연구실 등에서 발생한 점 △학생들의 취업 등에 중요한 교수의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뤄지기도 한 점 △행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뤄져 온 정황이 있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했어야 했다”며 “이런 특별한 사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피해사실에 관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거나 원고의 행위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고 봐 성희롱의 성립을 부정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 정도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고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할 때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등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성희롱 소송의 심리와 증거판단의 법리를 제시한 최초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향후 모든 성희롱 관련 사건에 관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라며 “성희롱 피해자의 인권보장 및 권리구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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