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현실화된 한국판 '러스트벨트'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6:52

수정 2018.04.15 16:52

[데스크 칼럼] 현실화된 한국판 '러스트벨트'

서울 시민으로 산 지 30년이 넘지만 아직도 종종 당황할 때가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서울 이외 지역에 대한 엄청난 인식차를 느끼는 경우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인천 사는 사람이 서울 강남에 업무차 갔다가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인천이요"라고 했을 때 "지방에서 오셨네요"와 같은 반응 말이다. 서울에서만 살아왔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한다. 하지만 인천도 내로라하는 대도시 중 한 곳인데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소도시 축에도 못 끼는 읍·면 출신에게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궁금해진다.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1974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펴냈다. 슈마허의 주장 중 하나는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도시화가 전 세계에 인구 1000만명 이상의 메가시티를 탄생시켰지만 향후에는 '스몰시티'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거대도시 못지않게 발전해 가는 작은 도시들의 활약상이 곳곳에서 나온다. 세계적 가구기업 이케아 본사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롬이 아닌 인구 8000명의 농촌 알름훌트에 있다. 커피와 문화를 결합시킨 글로벌 기업 스타벅스 본사는 미국 뉴욕이 아닌 시애틀에 있다. 일본 교토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교세라, 닌텐도 등 첨단 기업들의 본사 소재지다.

지역도시들의 선전은 크게 보면 국가균형의 문제다. 인구, 부 등의 쏠림이 덜하다는 의미다. 제대로 된 기업이 있으면 특출난 대학이 있고, 젊은이들은 굳이 대도시로 떠나갈 필요가 없다. 대도시와 지역도시, 그리고 읍·면이 그 나름의 순환구조를 가지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한국의 상황은 언급한 여러 다른 나라 사례들과는 많이 다르다. '인천광역시=지방'으로 인식할 정도로 서울과 지역 간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향후 30년 내 226개 시.군.구 중 85개가 저출산.인구유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소멸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저성장.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지역산업이 몰락하면서 지역도시들은 쇠락 조짐이다.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했던 도시 중 하나였던 구미시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가 각각 베트남, 경기 파주로 옮겨가면서 활기를 잃었다. 경북 포항, 경남 창원, 전북 전주 등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소멸을 막을 딱 부러지는 정책대안은 없다. 지난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출범했고, 2005년부터 연간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지역발전을 위해 투입했지만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다만 오답은 있다. 제조업 중심으로 도시를 발전시키려는 산업화 시대의 방식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도시의 생사여탈권을 사실상 기업이 쥐고 있는 만큼 지역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다 지역인재 배출, 지역정부와 기업.연구기관(대학)을 연결하는 '기업이 혹할 수 있는' 지식정보 생태계 구축이 필수불가결하다. 교토와 중국 선전은 이 같은 시스템이 만든 성공사례다.

'6.13 지방선거' 열기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성장산업 선점, 청년일자리 창출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울산, 포항, 구미, 창원, 군산, 영암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지역도시들이 쇠락하고 있는 가운데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의미가 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요인이었던 '러스트벨트'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판 '러스트벨트' 해법 마련이 당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이 선거를 통해 다듬어지기를 기대한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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