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정유사와 유가의 역학관계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6 17:02

수정 2018.04.16 17:35

[차장칼럼] 정유사와 유가의 역학관계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국민학교였다) 이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이 50년 정도분이라 우리가 노인이 됐을 때 엄청난 에너지 대란을 겪을 것이라고. 당시 선생님은 상당히 심각하게 제자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수업을 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순진하셨던 걱정이다.

셰일혁명 등 원유 채굴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현재 세계 석유 매장량은 내 초등학교 시절보다 더 늘어났다. 앞으로도 석유는 전 세계인이 50년 이상 사용하고도 남을 양이 묻혀 있다고 한다. 어쨌든 1980년대만 해도 '검은 진주' 석유는 정말 귀했다.
아버지는 겨울마다 난방 필수품인 석유곤로에 기름을 부을 때면 정말 정성을 다하셨다. 형이 대신 기름을 넣다가 행여 몇 방울 흘리기라도 하면 불같이 역정을 내셨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구호가 절약의 대명사였던 시절이다. 아마도 오일파동 직후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최근 정유업계도 '현대판 오일파동'의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미국의 시리아 공습으로 중동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유가가 출렁인 탓이다. 사상 최대 호황인 정유사 앞에서 뚱딴지 같은 소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오해가 있다. 보통은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의 주머니사정도 두둑해지는 걸로 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유가 오른다고 무조건 정유사들이 웃을 일이 아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였던 2012~2013년에는 정유사 연간 흑자규모가 평균 1조원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유가가 40달러 수준이던 2016년에는 정유 4사의 연간 흑자 규모가 2조원에 달했다. 유가가 평균 80달러 선이던 2014년에는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정유사들이 모두 적자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고유가=정유사 폭리' 구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유사들의 수익은 유가보다는 안정적 가격 흐름과 수급 상황에 달려 있다.

잘나가는 정유사들이 최근 유가 상승을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4년의 악몽 때문이다. 당시 배럴당 100달러였던 유가가 불과 석 달 새 50달러 선으로 추락하면서 정유업계는 창사 첫 적자의 아픔을 맛봤다. 고유가에 들여온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들을 헐값에 팔아야 했다. 정제할수록 손해만 커졌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정유산업의 종말이라는 공포감까지 퍼졌을까. 오일파동 이후 40년 만에 겪은 큰 충격이었다. 감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직원들이 수두룩했다.
반대로 유가가 급격히 올라도 석유제품 판매는 타격을 입는다. 당장 기름값부터 아끼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유사에 '유가 80달러 돌파설'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cgapc@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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