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댓글은 무죄, 조작은 유죄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7 17:00

수정 2018.04.17 17:00

[이구순의 느린 걸음] 댓글은 무죄, 조작은 유죄


인터넷 댓글이 또 사고를 쳤다. 이명박정권이 국가기관을 동원해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조작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현 정권 집권여당과 관련된 댓글조작 사건이 터졌다.

인터넷 뉴스 댓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좋은 뜻에서 만들어진 댓글이 되레 "없는 게 낫다"는 말까지 듣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언론과 함께 댓글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그러나 사이버 폭력과 여론조작 같은 댓글의 문제점도 같이 자라났다.
선거 때마다 댓글을 악용한 여론조작 문제가 제기됐고, 악성댓글에 시달린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겼다. 결국 2007년에는 댓글을 달 때 본인의 신분을 확인하도록 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됐다. 실명제도 탈이 났다. 본인을 확인하기 위해 저장해 놓은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 위헌판결을 내렸다.

연이어 댓글 사고가 터지니 정치권과 인터넷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기사에 아예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하자거나 이미 위헌판결을 받은 실명제를 다시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

20년 가까이 댓글을 둘러싸고 이래저래 안 써본 수단이 없으니 쓰고 버린 수단까지 다시 만지작거릴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처럼 처방을 내려서는 안된다. 댓글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내린 처방은 병을 고칠 수 없다.

손쉽게 국민 여론을 자기편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터무니없는 욕심. 자기 기사 유통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포털을 이용해 쉽게 클릭 수를 늘려보려는 언론사들의 무지함. 언론사의 기사를 헐값에 사다 이용자들을 앞마당에 묶어 두려는 포털회사들의 장삿속. 이해관계자들의 욕심을 교묘히 악용해 여론을 조작해주겠다고 나서는 범죄인들….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얽혀 매번 댓글을 악용하는 사고가 터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 단칼에 이 문제를 해결할 묘수는 있을 수 없다. 그저 포털회사들에 굴레 하나 덧씌우거나 아예 댓글을 없애 국민의 입을 막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포털회사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기술적 대안이 있는지 제시해줬으면 한다. 언론사와 단체들은 포털과 건전한 관계 맺기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면 좋은지 머리를 맞대줬으면 한다. 정치권은 쉽고 편한 여론 물꼬 바꾸기 욕심을 버려줬으면 한다. 그리고는 모두 모여 대책을 찾아줬으면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국민의 일상이 된 인터넷 세상을 건전하게 만들 묘수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댓글이 사고를 친 게 아니다.
댓글을 자기 편한 대로 써먹으려 덤빈 이해관계자들이 사고를 친 것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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