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여사일 줄 알았다"..도로에서도 성차별에 멍드는 사회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8 15:30

수정 2018.04.18 15:30

[fn스포트라이트, 일상 속 성차별](6)
'여자일 줄 알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직장인 박모씨(30)는 정지선을 한참 넘어서야 멈춰선 차량의 운전석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운전대를 쥐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박씨는 "차에 치일 뻔 할 때마다 운전자를 보면 대부분 여자였다"며 "여성혐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김여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났거나 사고 위기 때마다 차량 운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택시 승객의 성별에 따라 택시기사의 태도도 달라진다.

18일 한국여성민우회가 발표한 '2017 성차별 보고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성차별을 당했다는 응답이 두번째로 많았다.
도로 위에서도 시민들은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율 낮아도 여성은 '김여사'
'초보운전, 김여사 운전 중'
최근 이 같은 앞 차량 초보운전 스티커를 본 김유정씨(31.여)는 기가 막혔다. 스티커 문구 옆에는 하이힐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김씨는 "김여사가 초보운전이냐. 그럼 여자는 다 초보운전이고 운전을 못한다는 말인가"라며 "이런 문구를 만드는 회사나, 좋다고 붙이는 운전자나 성차별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차를 제대로 못하거나 황당한 사고를 내는 여성운전자를 뜻하는 '김여사'의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2000년대 중반 차량 3대가 설법한 공간에 가로로 주차된 차량 사진 등이 담긴 '김여사 시리즈' 온라인 게시글이 단초가 됐다. 2012년에는 '김여사 시리즈 완결편'도 이어졌다. 이후 지난해 10월 한 여성운전자가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상가에 차량을 들이받는 등 여성운전자가 낸 사고 소식에는 꾸준히 '김여사'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김여사'는 여성이 운전·주차를 하지 못 한다는 고정관념이 낳은 차별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여성 가해운전자 교통사고 비중은 2015년 총 23만35건 중 4만3990건으로, 18.9%였고 2016년 총 22만917건 중 4만3506건으로, 19.8%에 그쳤다.

여성운전자 교통사고율은 운전면허자 비중과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 비율은 2015년 3029만3621명 중 1237만3038명(40.8%), 2016년 총 3119만359명 중 1289만8375명(41.3%)으로 40%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운전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사람의 행위라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며 "'솥뚜껑 운전사(전업주부)'나 '김여사'와 같은 차별적 표현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박힌 여성성을 반영하고 있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추행 시비 우려, 남자 대리기사 찾기도
택시를 타면 한 마디씩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윤모씨(32)는 여자친구 동네에서 데이트를 한 후 택시를 타자마자 기분이 나빴던 경험을 털어놨다. 여자친구와 작별 인사하며 차량에 탑승한 윤씨에게 택시기사가 "남자가 왜 여자친구 집까지 안 데려다주고 먼저 택시타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별 대꾸도 하지 않고 넘겼지만 이후부터는 여자친구를 먼저 보낸 뒤 택시를 잡아 탄다고 전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여성민우회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택시기사로부터 "아침부터 안경 낀 여자를 태우면 하루 종일 재수 없다" "여자가 왜 앞자리에 앉느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얼른 시집가서 남편 돈 타먹지 왜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냐"는 등 성차별적인 말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미투운동이 이어지면서 남성이 대리운전을 부를 때는 남성 운전기사만 찾기도 한다.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하는 김모씨(59)는 대리운전 예약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여자 말고 남자 대리운전 기사로 불러달라"는 것. 김씨는 "예전에 지인이 술을 마시고 여자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가 성추행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준 적이 있다고 들었다"며 "아예 이런 논란이 없도록 남자 기사를 부르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최원진 활동가는 "택시를 타면 손님이 왕이어야 하지만 젠더문제가 맞물리면서 기존 시장 권력체계도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며 "택시라는 사적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성 기사를 찾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할 수 없지만 또 하나의 펜스룰을 선언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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