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설

'주 52시간 근로' 앞둔 건설사.. "비용.공사기간 급증" 해외건설 '비상'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8 17:22

수정 2018.04.18 17:22

가격경쟁력·품질 담보 못해 공사기일 차질땐 신뢰 잃어
해외수주 올스톱 가능성도
'주 52시간 근로' 앞둔 건설사.. "비용.공사기간 급증" 해외건설 '비상'


"수익성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면 해외건설 수주는 올스톱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건설사업도 마찬가지다.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만 해도 발주금액과 준공시기가 고정돼 있는데 갑자기 인건비가 증가하고, 공기가 지연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오는 7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국내 건설업계가 패닉에 빠졌다. 상시근로자 수가 300명을 넘는 건설사들은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현장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61시간, 해외 건설근로자는 67시간에 이른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근무시간이 주당 9~15시간 줄어든다.

■인건비 부담 2배, 공사품질 저하 우려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건설근로자의 근무시간이 주당 52시간 이내로 줄어들면 해외건설 시장이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인력 추가 투입에 따른 인건비.간접비 증가와 공사품질 저하, 공기지연 우려가 제일 크다"며 "해외건설 근로자까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면 해외공사를 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꽉 짜인 인력관리를 통한 공사비 절감, 철저한 공사기일 준수인데 모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해외 기술인력만 해도 당장 7월부터 최소 50% 이상 늘려야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축소에 맞춰 한두 명 더 투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며 "플랜트 현장은 기술인력이 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력이 많게는 2배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보통 1조~2조원 규모 플랜트 현장은 100명 안팎의 본사 인력이 현지에 상주한다. 여기에 50명만 늘어도 인건비와 체류하는 데 드는 간접비(주거.식대 등)까지 포함하면 연간 200억원 정도가 추가된다는 설명이다. 플랜트가 완공되기까지 3~5년으로 잡아도 공사비가 1000억원 가까이 더 드는 셈이다.

해외현장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적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동은 낮기온이 섭씨 50~60도까지 올라가는 탓에 작업을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진행한다"며 "50도를 넘어가면 조업중지가 내려지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앞으로는 하루 근무시간이 정해질 수밖에 없어 공사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쟁력 잃어 중국에 밀릴 것

공사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해외 플랜트 공사의 경우 철야작업을 하면서 진행하는 공정이 수두룩한데 주 52시간으로 작업시간을 고정하면 중요한 공정에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유플랜트의 경우 증류타워 설치에만 수십명의 전문인력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사를 하는데 근로시간 준수규정 때문에 작업 도중에 다른 인력이 들어올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칫 인수인계가 미흡할 경우 시공에 차질이 생기고, 수십~수백억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 용산의 랜드마크인 드래곤시티의 브리지를 연결할 때도 사흘간 밤낮을 쉬지 않고 크레인을 가동해서야 고정을 시켰는데 해외 플랜트의 경우 이보다 더 미세하고 복잡한 공정이 수두룩하다"며 "이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해외 건설시장에서 중국기업이 저가경쟁으로 위협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기업들은 가격이 비싸도 뛰어난 품질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기일을 지킨다는 신뢰 덕분에 버티고 있다"며 "가격경쟁력도, 공사 품질도 담보할 수 없으면 해외 수주시장에서 중국에 완전히 밀리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사업장도 줄줄이 손실 발생할까 공포

국내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수주해 공사를 진행 중인 사업장은 공사금액과 완공시기가 정해져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배정된 인력보다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공사단가가 급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연속작업이 필요한 공정이 많은 경우 시공 품질이 낮아지고,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건설현장이 적정공사비와 적정공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돌관공사(인력과 장비를 집중 투입해 공기를 앞당기는 것)와 장시간 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갑작스럽게 적용하면 도저히 이를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상 여러 참여자와 협업을 통해 시공이 이뤄지는데 한창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의 기술자가 빠지고 다른 기술자가 들어오게 되면 시공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계가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유예기간이라도 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해외 파견근로자에 대해서는 적용 예외를 두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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