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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한반도 운전대와 자율주행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27 16:35

수정 2018.04.27 16:35

【베이징=조창원 특파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배 운항에 지분이 있는 자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맞춰 이러쿵 저러쿵 주장을 내놓다보니 원래 목적과 달리 엉뚱한 데로 가는 꼴을 빗댄 말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운전대'론이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협상의 주도권을 누군가가 꽉 쥐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게 '한반도 운전대' 이야기다. 미국 주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끌고 왔다는 말에 이어 최근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운전대를 잡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누구나 '운전대'를 잡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차운행에 빚대 '한반도 운전대' 이야기가 나오지만 요즘엔 차량도 자율주행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은 본격 상용화시대를 맞지 못했지만 이 방향으로 가는 건 대세다.

'한반도 운전대' 역시 자율주행의 관점에서 곱씹어 볼 때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운전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탑승자만 있을 뿐이다. 자율주행 시대가 안착이 되면 인간이 운전을 하는 것 자체를 규제하는 상황이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안전한 프로그램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운전대에는 무려 6명의 탑승자가 서로 운전대를 잡겠다거나 적어도 운전대에 개입하겠다는 형국이다. 출발 전부터 누가 운전대 주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이 치열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이 배제되는 '차이나패싱'과 일본의 소외를 뜻하는 '재팬패싱' 모두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원래 한반도 지정학적 문제의 큰 배경이 된 미국과 러시아 역시 '운전대'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동승자가 이리 많다 보니 차량의 네비게이션에 목적지와 경로를 입력하는 것 자체가 난제다. 차량 탑승과 운항 과정에 각각 원하는 코스가 있을 것이다. 각자 원하는 건 많으면서도 정작 운행에 따른 비용 지불에 대해선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싸움날 게 뻔하다.

일각에선 중국이 북한을 앞세워 자국에 유리한 이동경로를 선택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고정불변의 원칙으로 내세우면서도 미국과 패권을 겨루는 과정에 북한을 협상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동북아 패권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픈 욕망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식이다. 결국 기계적 방식의 운전자가 차를 모는 것에 대해 동승자들이 모두 불편해 하는 게 현재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적극 나서며 파격 행보를 보이는 점 역시 '한반도 운전대' 논쟁을 더욱 촉발시킬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꽉 쥐고 있던 형국에서 북한과 주도권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벌써부터 나온다. 예전 전통적인 한미일, 북중러 구도로 빨려들어가면서 한반도 평화 노력이 또 다시 공전을 거듭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이번 남북화해 무드는 과거의 폐단을 철저히 끊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어차피 동승자를 밀어낼 순 없다. 다만 현재 차운전 방식이나 자율주행이나 변치 않는 건 차주인이다.
북중러와 한미일 구도에 앞서 한국과 북한이 운전대의 주인이라는 점을 못박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는 북핵 폐기다.
주인과 목적지만 정확하면 자율주행차는 예측하기 힘든 변수들을 최적화해 목적지에 도달한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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