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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짧은 글, 긴 글, 댓글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30 17:02

수정 2018.05.01 17:19

[fn논단] 짧은 글, 긴 글, 댓글

큰일 났다!

세계는 스토리 전쟁 중인데 우리는 댓글 전쟁 중이다.

세계는 창의력 개발 전쟁 중인데 우리는 말 꼼수 개발 전쟁 중이다.

스토리 전쟁은 드라마나 영화, 광고와 마케팅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분야 최고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빚어내는 자, 그 분야 최강의 승자로 등극한다. J K 롤링이 쓴 '해리포터' 스토리는 1997∼2006년 10년 동안 4억부가 팔렸고 영화와 소설로 308조원을 벌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삼성 반도체 수출액은 231조원이었다. 작가 롤링은 작년 한해 동안 1000억원을 벌었다.

21세기, 세상을 움직이는 키워드는 '창의적 사고'와 '스토리텔링'이다. 멋진 스토리를 만들려면 창의력을 키워야 하고 창의력은 긴 글을 읽고 되새겨야 개발된다.

긴 글은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고, 심사숙고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낳는다. 짧은 글은 이해력도 떨어뜨리고 결국 생각시스템 뇌도 퇴화하게 만든다. 헬스클럽에서 육체의 근육을 키우듯, 긴글 읽기로 사고력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과거, 긴글 읽기를 진정한 공부로 여긴 시절이 있었다.

홍명희의 '임꺽정' 10권! 박경리의 '토지' 20권!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 32권!

수많은 장·단편 작품을 직업 때문에 열심히 읽었다. 수십권짜리 대하소설을 독파하면 가슴이 뛰었다. 태백산맥을 밤낮으로 종주한 듯, 옥룡설산에서 노스승의 필살기를 전수한 수제자인 듯 가슴이 벌렁거렸다. 친구들 술자리도, 회사의 토론회도 두려울 게 없었다. 보검 찬 당상관처럼 견고 당당했다. 꼭 장편소설만 긴 글이 아니다. 기승전결 있는 모든 글은 긴 글이다.

사람들은 전철과 버스 속에서, 사무실과 카페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세상을 열심히 독파한다. 실시간 급상승 문자로 세상과 빠르게 소통하고 실시간 급상승 댓글로 세상을 빠르게 진단한다.

하지만 쾌락중추만 자극하는 건 아닌가? 긴 글에서 도망가서 짧은 글 뒤에 숨는 건 아닌가? 인터넷 닭장 속에 갇혀서 주는 먹이만 쪼아 먹는 병아리 꼴이 된 건 아닌가!

주위를 힐끔 둘러보면 모두 짧은 글에 빠져 있다. 청춘일수록 '하이쿠' 시인처럼 한 줄도 길다는 얼굴 표정들이다. 하루종일 읽는 조각 글 모아봐야 서너 움큼이고, 조각 글 죄다 꿰매봐야 누더기밖엔 안된다. 나 역시 오늘도 인터넷 사이트를 헤엄치며 짧은 글만 읽고 말았다.

어제도 오늘도 짧은 글에 뇌를 종속시키고 말았다. 간혹 긴 글을 읽다가 슬쩍 슬라이드 바를 쳐다봤고 얼른 탈출해 버렸다.작전은 하나 밖에 없다.


송나라 구양수선생의 3다 (다독 多讀 다작 多作 다상량多商量)야말로 황금률이고 전가의 보도다.

긴 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승리한다.


<스토리텔링>은 21세기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으로 격상되어야 한다.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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