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기업연구소 4만개 시대

최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2 17:16

수정 2018.05.02 17:16

[특별기고] 기업연구소 4만개 시대


기업연구소 수가 4만개를 넘어섰다. 정부가 1981년도에 최초로 53개의 연구소를 인정한 이래 75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기업연구소에서 중소기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연구소의 96%가 중소기업이며, 중소기업 연구원 수는 2015년 이후 대기업보다 많아졌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을 의미하는 R&D 집약도 또한 대기업보다 높다.

이런 성과에 정부가 큰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기업연구소 인정제도를 도입하자마자 연구개발비에 대한 조세지원과 연구인력에 대한 병역특례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한 기업 대상 자금지원을 확대하고, 연구소 운영에 대한 규제를 폭넓게 완화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형적 허리 부족(missing middle) 현상이 존재한다. 10인 미만 소상공인 기업에서 전체 근로자의 43%가 근무하고 있다. 미국(10%), 일본(13%), 독일(20%) 등 주요국에 비해 매우 높다. 중소기업 연구소 또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연구원 10인 미만의 소규모 연구소 비중이 93%로 매우 높게 나타난다.

기업 R&D는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전환점에 도달했다.

기술의 수명주기가 단축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R&D의 패러다임이 성능 중심에서 속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폐쇄적 방식의 독자적 R&D 활동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외부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중심으로 기업연구소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창의적 혁신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양적 투입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중소기업 R&D 지원제도를 개방형 패러다임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기업의 R&D 저변 확대가 정책의 주요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기업연구소가 제대로 흡수능력을 키워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행 연구소 인정제도는 최소한의 인적·물적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연구소에 동일한 정책적 지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연구소를 혁신역량에 따라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우수 연구소에 대한 차별화된 지원책 마련을 통해 기술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

민간 R&D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율과 정부의 개입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혁신의 주축이 돼야 할 기업 R&D의 역동성이 정체되지 않아야 한다. R&D정책 수립·집행 과정에서 기업이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R&D 지원에는 효율성 못지않게 정책적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될성부른 중소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지만,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R&D활동에 적극적인 중소기업에 대한 꾸준한 지원 또한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도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도덕적 해이 방지 등 자정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R&D는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했다.
급변하는 R&D 환경에서 혁신을 위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내딛는 발걸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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