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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헤어짐의 미학은 어디에…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3 18:21

수정 2018.05.03 21:22

헤어질 때도 예의가 필요하다. 잘 헤어지는 방법을 다룬 서적이 있을 정도로 이별의 예절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선인들도 아름다운 이별을 강조했다. 명심보감에는 "떠나는 사람의 원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며 "떠나는 사람에게 은혜와 의리를 베풀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대유그룹은 헤어짐의 미학을 몰랐거나 무시한 듯 하다.

최근 옛 동부대우전자 출신 임원 10여명은 대유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했다.
이들은 대유그룹이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하자마자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난 임원진이다. 대유그룹은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보상 없이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보통 업계에서는 이런 경우 임원진에게 예우 차원에서 계약기간만큼의 연봉을 미리 지급한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은 고문직을 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유는 매몰찼다.

대유그룹은 회사를 떠난 임원진들이 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사태는 대유그룹이 그들에게 4개월치 월급을 지급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같은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관계자는 "옛 임원진들이 단체로 소송에 나섰던 건 당연한 일"이라며 "대유그룹이 상도덕 없이 이들을 내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옛 임원진들이 집단적으로 법적 수단을 검토하지 않았다면 대유그룹은 어물쩍 넘길 수도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유그룹의 횡포는 임원진뿐 아니라 일반 사무직에게도 향했다. 대유그룹은 대우전자 인수 당시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인력 재조정은 크게 잊지 않고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유그룹은 대우전자 인수 한 달 만에 비공식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정리 대상은 연차를 가리지 않는다. 입사 4년차 대리부터 20년차 부장까지다.
한 대우전자 직원은 "전체 차·부장급의 20% 가량이 권고사직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우전자 사무직 노조는 권고사직이 지속될 경우 고용노동부에 정식으로 진정서를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유그룹은 대우전자 인수를 발판으로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종합가전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앞서 헤어짐의 미학부터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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