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현실로 다가오는 50년전 영화 속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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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8년은 미국 역사에 있어서 베트콩과 월맹군의 구정대공세,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민주당 대선후보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이 벌어진 격동의 한 해였다.

그해의 또 한 가지 사건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공상과학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개봉이었다.

원작 소설과 함께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 영화는 뛰어난 영상과 시대를 앞선 상상력을 보여줬지만 시사회에서 관객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다가 히피족 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고립감에 빠졌던 이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면서 흥행에 성공한다.

이 영화가 끼친 영향은 크다. 젊은이들에게 항공우주와 컴퓨터 공학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면서 PC산업을 촉진했으며 당시 옛 소련에 위성 발사와 유인 우주 비행 경쟁에서 뒤처졌던 미국이 유인 왕복우주선 개발에 착수하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과학과 상상력을 보여주면서 미래를 제시했다. 개봉 다음 해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은 직접 눈으로 본 달의 모습이 영화 '2001'에서 본 것과 매우 흡사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묘사된 우주는 정확했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를 꼽으라면 사람이 아닌 '핼(HAL) 9000'이라는 컴퓨터다.

인간보다 우월감을 갖고 감정까지 느끼는 이 컴퓨터는 사람과 가진 위성 인터뷰에서 자신은 단 한 번의 오차를 낸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자기 기분에 따라 우주선 승무원들의 작동명령을 거부하는 횡포를 부리면서 탑승자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과 대화하며 음성명령으로 작동하는 이 컴퓨터는 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우리에게 미리 시사해줬다.

최근 국제뉴스의 키워드로 AI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지나친 기술 발달로 가져올 부작용 등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

앞으로 기계가 사람 대신 물건을 만들고, 금융이나 법률 상담을 도와주는 등 막대한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내용은 물론 비영리 싱크탱크 랜드코퍼레이션은 AI로 인해 자칫 2040년 이전에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AI에 대한 의존이 오판을 야기할 수 있다며 이것이 드론(무인항공기)이나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살상용 로봇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부터 안면인식을 도입한 중국 공안당국은 장시성에서 열린 공연장에 운집한 청중 수만명 중 이 기술을 이용해 수배자를 찾아냈다는 소식이 있다. 올해 베이징 공안당국은 요원들에게 안면인식 기능이 있는 스마트 글라스를 지급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은 가정용 로봇을 개발 중이며 이르면 내년에 소비자에게 판매할 계획이며 중국기업 화웨이는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AI를 규제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 공동창업자로 모기업 알파벳 사장인 세르게이 브린은 지난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AI의 발달로 현재 인류는 기술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면서도 이로 인한 위험에 우려도 함께 나타냈다.


기술은 선하거나 악한 목적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전력생산과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폭탄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는 원자력이다. 점점 커지는 거대 IT기업들과 앞으로 인류의 삶과 글로벌 경제에 AI가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브린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들이 AI와 관련된 책임과 윤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