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평화로 가는 길, 보다 냉철해지자

진보의 강점 중 하나는 '감성모드'이다. 군부독재 시절 오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끈끈한 동지애와 단단한 결속력은 독재정부의 서슬 퍼런 핍박을 견딘 결과물이요,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공유한 단일대오의 산물이었다.

치열한 민주화 투쟁 속에 체득된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강한 열정을 대중의 삶으로 투영시키기 위한 효과적 수단이 바로 감성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느슨한 결속력과 안정희구적 성향을 띤 보수보다 감성적 깊이는 깊은 편이다 .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대화 모드가 지속되면서 문재인정부를 향해 '감성팔이'를 중단하라며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진보의 감성 모드가 중도보수층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본능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셈이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중간평가 프레임으로 6·13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둬 정국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보수정당엔 최근의 대북 훈풍모드가 결코 달가울 리 없다. 그동안 안보이슈에서 강점을 보여온 보수정당인 만큼 청와대와 여당 주도의 대북관계 개선 국면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적인 4·27 판문점선언에서 한·중·일 회담, 북·미 회담으로 연결되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감성모드도, 당리당략을 앞세운 '견제구'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이행 로드맵을 완벽하게 세울 수 있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과거 '대화~협상~파기~긴장~대화'라는 실패의 사이클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한 촘촘한 국제공조가 핵심이다.

또 미·중·러·일 등 한반도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전략적 대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이번 판문점선언의 주요 내용이 과거 두 차례에 걸친 공동선언문과 비교해 새로운 게 거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 과거 선언보다 톤과 수준에서 후퇴했다는 주장도 있다. 자칫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거 어느 때보다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돼 있다.

미국이 염려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보장을 위해 북한이 비핵화 이행보다는 핵협상력을 지렛대 삼아 경제적 보상 등 '반대급부'만 챙기려 하는 것이다.

행여나 우리 정부가 과도한 낙관론만 형성하는 데 기여해선 안 되는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 의지 확인과 남북 군사적 대치 완화, 8·15 이산가족 상봉 등을 담은 4·27 선언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이를 생중계로 지켜본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만 인식해선 안 된다.
정부, 청와대, 여당 모두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라는 엄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한순간도 냉정함과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결코 짧지 않은 여정에서 감성적 접근방식은 지양하자.

중요한 것은 다양한 협상 단계마다 냉철한 현실인식, 대국민 소통, 정치권 대화와 설득, 견고한 국제공조를 토대로 한 철저한 검증을 포함한 실질적인 비핵화 로드맵 이행이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