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출산 후 진학·취업은 왜 안되나요?


앞전 칼럼에서 필자는 미혼부모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인재의 질(質)에 집중하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DNA의 영향이라는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유교적 영향하에서 우리나라는 현세의 출세와 성공에 대한 신념이 강하고, 자신과 미래세대의 신분상승에 올인하는 성향이 다른 어느 문화권보다 높아 양육자원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기 어려운 혼외출산 혹은 미혼모를 꺼리는 반대급부적 현상이 생겨났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만큼 경제적 위상을 가지게 된 마당에 이제는 그에 걸맞은 '인권과 복지'도 만들어내야 할 입장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은 좀 심하고 하루빨리 개선돼야 마땅하다. 필자는 2012년 경 청와대 비서관 시절 미혼모 등 취약가족의 지원을 소관 업무로 두고 있었다. 한 해 3000여명으로 집계되는 24세 미만 한부모(즉 청소년한부모)들을 지원하는 국가정책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민간 후원을 끌어들여 지원을 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소년 한부모를 위한 정책패키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절실한 현금부조는 딸랑 매달 15만원이 전부인 상황이라 집도 절도 없는 청소년기에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이어가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었고, 따라서 대다수 미혼모들은 직접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이나 시설에 맡기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재정당국에 사업예산의 증액을 요구했으나 매번 거절을 당하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필자가 나섰고, 한 공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연결해 한시적이긴 하지만 현금부조를 한 달 추가 40만원씩 더 들어가도록 해 일부 청소년 한부모를 도운 적이 있다. 아이나 본인이 아파 취업을 중단하는 시기 신용불량자로 떨어주는 것을 막아준 종잣돈이 되었다는 분도 있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추가 기술을 배워 안정된 직장으로 이동할 여력이 생겼다는 엄마도 있어서 수혜자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미혼모 이야기를 하면 서울 서대문구 애란원 한상순 원장(2016년 퇴임)의 노고를 잊을 수가 없다. 평생을 미혼모들의 친정어머니 역할을 하며 살아오면서 애란원을 청소년 한부모 지원을 위한 종합서비스 기관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방황하는 위기청소년의 상담에서 시작해 이들이 출산을 선택하면 임신·출산 기간의 생활보호는 물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대안학교 운영, 직접양육을 선택한 엄마들을 위한 미혼 한부모 생활시설 운영 등 연결된 모든 가족의 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미혼 한부모의 자립과 성장을 도와온 것이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한 원장과 애란원의 헌신·노고를 격려하며 돕고 있지만 이런 중요한 사업을 민간의 손에만 의존한 채 언제까지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을 것인가.

'선취업·후진학'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어떻게든 아이를 가졌으면 '선출산·후진학(취업)'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마땅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숭고한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주변의 냉대와 무관심에 밀려 고통을 겪는 것을 두고 본다면 야만도 그런 야만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미혼 한부모 지원을 본격화해야 한다. 그래야 편견도 수그러든다.

이재인 사단법인 서울인구포럼 대표 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