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어느 노조 간부의 하소연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8 17:16

수정 2018.05.08 17:16

[차장칼럼] 어느 노조 간부의 하소연

"친노동 정부라는데 도대체 산업현장을 알기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나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중견기업 노조 간부로 있는 고등학교 선배는 근로시간 단축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열을 올렸다. 선배는 문재인정부 지지자였다. 하지만 7월 시행을 앞둔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가득했다. 회사에서도 적잖이 골머리를 앓는 듯했다. 선배네 회사는 300인 이상 사업장인 탓에 7월부터 주당 52시간 근로 준수대상이다.
멕시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한다는 '노동의 나라' 한국의 노조 간부답지 않은 소리가 쏟아졌다. 주로 공작기계를 수출하는 선배네 회사는 주문량이 몰릴 때는 1년에 대여섯 번은 주당 80시간 이상씩 일한다. 혹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는데 노조 간부가 왜 언성을 높이냐고 되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돈 때문이라고. 선배는 특근 기간을 따져보니 1년에 두 달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은 고되지만 특근수당이 세서 다른 달의 두 배 가까운 월급을 받을 수 있다보니 노조원들도 초과근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네 회사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얻는 이익보다 현실적 반대급부를 원하는 기류가 우세한 듯 보였다.

물론 선배네 회사의 사례를 일반화할 의도는 없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정책이 과연 산업 현장의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취지가 좋다고 획일화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은 당장 아우성을 친다.

지난 2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주요 기업 간담회만 보더라도 정부와 산업 현장의 괴리는 커 보였다. 김 장관은 참석한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근로시간 단축의 모범을 보여달라고 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예상되는 협력사들의 피해도 대기업들이 보전해 달라는 당부를 곁들였다. 대기업 관계자들도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탄력근무제라도 대폭 풀어줘야 초과근무가 불가피한 시기에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라고 맞섰다. 기업들은 "일년에 한두 달 필요하다고 수백, 수천명의 정규직을 뽑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김 장관은 간담회 직후 이 문제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큰 틀만 훼손되지 않으면 될 문제다.
산업 특성상 초과근무 사정이 큰 기업들은 탄력근로를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다. 현행 최대 3개월인 탄력근무 기간을 최소 6개월 이상으로 허용하면 주당 52시간 룰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게 기업들의 목소리다.
진짜 김 장관이 '발등의 불'이 떨어진 기업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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