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특별기고]

남양주와 화성, 정약용과 정조!

이석우 남양주시장. 사진제공=남양주시


남양주! 하면 정약용입니다. 화성시는 융.건능(사도세자.정조)이 있는 곳이지요? 남양주 정약용은, 건릉의 주인공 조선 22대왕 정조를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정조7년 세자 책봉을 기념한 과거시험장에서 둘은 만납니다. 임오년(1762년) 6월16일생 정약용이라 소개합니다. 임오생이라! 정조의 마음은 경련이 일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해가 임오년(1762년) 5월21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였을까요. 정조는 정약용을 아끼고 후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1789년(정조13년)에 화성시로 사도세자 묘를 이장하고 정조는 능행을 합니다. 한양에서 화성까지 수백명이 함께 움직여야 했지요. 가장 큰 문제는 폭 500m가 넘는 한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정약용은 80척이 넘는 배를 한 줄로 늘어 놓고 다리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배에 구멍을 뚫거나 파손을 하지 않고도 다리를 놓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공법이었다고 합니다. 동원된 배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다른 혜택도 줬으므로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배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융릉과 건릉을 합해서 융.건릉이라 하지요. 융륭은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한 릉입니다.
사도세자 묘는 처음에는 수은묘(垂恩)였지요. 정조가 화성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 높여 불렀는데, 고종이 1899년 사도세자를 장조라고 추존하면서 융릉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고종 황제의 릉이 남양주에 있는 건 아시죠?

정조가 편하게 아버지의 묘를 오갈 수 있도록 배다리를 놓고, 행궁이 있는 화성(수원 소재)을 축성한 정약용! 1800년 정조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7년의 인연입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던 세력, 관여했던 세력을 용서해야만 했던 정조!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던 임오년 생이란 이유로 정약용을 아낀 건 물론 아니겠지요.

정조와 사도세자, 정조와 정약용 인연이 마음을 아리게 하는 건 왜일까요. 아리고 쓰린 인연을 함께 품은 남양주와 화성시. 아픈 만큼 더 깊고 크게 성숙할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