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현장르포]"음료 들고 못 탑니다"라고 하자 아무데나 버리고 타는 승객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4 17:18

수정 2018.05.14 17:18

버스 음식물 반입금지 이후 정류장 모습, 쓰레기통 없는 정류장 많아 이곳저곳 일회용컵 방치
주변가게에 몰래 버리기도..쓰레기통 설치 목소리 커져
14일 서울시내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이 놔두고 간 음료컵. 정류장 벽에는 "커피 등 음식물을 들고 타지 맙시다"라는 문구의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사진=김유아 기자
14일 서울시내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이 놔두고 간 음료컵. 정류장 벽에는 "커피 등 음식물을 들고 타지 맙시다"라는 문구의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사진=김유아 기자


"안 됩니다. 버리고 타세요"

앞에서 한 시민이 승차를 거부당하자 뒤에서 음료컵을 들고 승차하려던 한 여성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곧 컵을 벤치 난간에 올려놓고 달아나듯 버스에 올라탔다. 다른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그를 쳐다봤지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금방 신호등을 건너온 50대 여성은 컵 주변을 피해 앉았다.

서울시내 곳곳 버스 정류장 벤치와 난간 여기저기에도 컵들이 위태롭게 놓여있다. 음료 소비가 늘어나는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버스정류장에 '음료컵 쓰레기 대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가 버스 내 음료컵 반입을 금지한 후부터 정류장에 버려지는 컵이 늘어서다. 이에 따라 버스정류장이나 버스 내 쓰레기통 설치를 요구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버리고 타라"는 운전기사, 아무데나 '슬쩍'

14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음료컵을 들고 있던 강준현씨(32)도 버스 탑승을 제지 당했다. 그가 잠시 뒷걸음쳐 버스에서 발을 뗀 사이 운전기사는 출입문을 닫고 떠났다. 남은 음료를 한입에 털어놓고 바로 탑승하려다 버스를 놓쳐버렸다는 강씨는 "쓰레기통도 없어 일단 들고 있었는데 그냥 두고 얼른 탈걸 그랬다"며 허탈해했다.

급한 마음에 음료컵을 아무 데나 버리고 타는 승객이 많아지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온다. 김형민씨(26)는 "최근 취객이 밤에 버스정류장 벤치에 다리를 올리다가 원래 놓여있던 컵을 우르르 떨어뜨렸다"며 "옆에 서 있다가 발과 다리에 음료가 튀어 불쾌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환경미화원 이모씨(58)는 "이번 조례 시행 전에도 얼음이 그대로 있는 음료컵을 버리는 경우가 있어 골치 아팠다"며 "이번 여름에는 더 심할 것 같은데 인력이 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고 전했다.

음료컵을 아무데나 버려서는 안되지만 쓰레기통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이 나온다. 직장인 고유정씨(여.25)는 "일반쓰레기는 되가져갈 수 있지만 음료컵은 쏟을까봐 가방에 넣기도 어렵다"며 "한 승객이 '쓰레기통이 없다'며 음료컵을 든 채 버스에 타려는 걸 봤는데 운전기사가 '길에 두고 타든지 내리든지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아 정류장 근처 아무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컵을 버리고 나오는 얌체족도 있다는 전언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버스정류장 앞 커피전문점 직원(27)은 "우리 가게 음료컵 쓰레기통이 문쪽에 있다 보니 버스를 기다리던 손님이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와 컵만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시민들은 쓰레기통을 추가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대학생 심주연씨(여.23)는 "쓰레기통이 없는 버스정류장이나 버스가 많은데 음료 반입 금지는 황당하다"며 "처음 실내 흡연 금지 때와 비슷한 혼란이 생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류장 앞 커피점 '골치'

버스 내부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독일은 버스나 지하철 내부에도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버스 운전기사측은 이 같은 의견에 부정적이다. 동작구에서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박모씨(48)는 "종점에서 버스 내부를 청소하면 일회용 컵이 4~5개씩나온다"며 "버스 내부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음료가 넘치거나 냄새가 나 더 큰 불편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쓰레기통 설치에 신중한 입장이다. 버스정류장 쓰레기통 설치 결정 권한은 각 구청에 있기 때문에 강요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시내버스 정류장만 5800개 이상에 달하는 상황에서 조례를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과도기 현상"이라며 "앞으로 교통, 환경 등 관련 부처가 협력해 문제를 보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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