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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여의도순복음교회 60주년 이영훈 담임목사를 만나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4 17:41

수정 2018.05.14 18:00

"순복음에 고난은 늘 축복.. 이젠 北 복음의 문 두드립니다"
세번의 방북… 남다른 對北비전.. 분단 벽 허물 수 있는 건 신앙뿐
경제지표 좋아졌다는 정부에게..쪽방촌 가보라, 여전히 힘겨워
나라 바꿀 수 있는 ‘사회환원’..미국 기부문화가 세계 움직여
여의도순복음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선출돼 올해 10년째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 목사가 8일 서울 여의도 교회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여의도순복음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선출돼 올해 10년째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 목사가 8일 서울 여의도 교회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소년과 할아버지, 그리고 조용기 목사

열살 소년이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 앞 서울 서대문 충정로 개척교회를 간 건 1963년 4월의 일이다. 평양서 미싱사업을 크게 했던 할아버지는 한국 초기 개신교의 본거지 평양 서문밖교회 장로 출신이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당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했는데, 그 무렵 통증이 더 심해졌다. 6·25전쟁 직전 월남한 소년의 가족은 따로 다니는 교회가 있었지만 거동이 힘들어진 할아버지는 새벽기도 장소를 이제 집 근처로 옮겨야 했다.
손자는 새벽마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그 교회를 갔다. 그 후 석달. 할아버지의 중대발표가 나온다. "앞으로 우리 가족 모두 이 교회로 옮겨야겠어. 젊은 목사 말씀에 은혜가 너무 충만해." 할아버지가 말한 젊은 목사가 당시 27세였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그 손자가 조 목사 후임으로 올해 10년째 순복음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 담임목사다.

60년 전 작은 천막에서 시작한 순복음의 역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시작점인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
60년 전 작은 천막에서 시작한 순복음의 역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시작점인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

지금 여의도 교회 전경.
지금 여의도 교회 전경.


열살 이영훈 목사의 눈에 순복음교회는 별천지였다고 한다. "당시 장로교는 너무 엄숙해 교회에선 숨소리조차 안 들렸어요. 박수 치는 교회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북을 치며 찬송을 불렀어요. 전혀 다른 세상이었죠." 기존 교회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파격적인 예배방식은 순복음교회가 국내는 물론, 세계 최대 교회로 커가는 밑바탕이 됐다. 이영훈 목사는 "사람들이 모두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외쳤던 교회, 긍정의 신앙이 순복음의 힘"이라고 정리했다.

1958년 다섯명 신도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에서 시작한 순복음교회는 1961년 충정로를 거쳐 1968년 허허벌판여의도로 옮긴 뒤 지금에 이른다. 그간 성도는 88만명까지 불어났다. 그리고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교회는 오는 18일 대규모 창립기념행사를 연다. 지독한 빈국에서 세계 10대 무역대국이 된 한국의 기적 같은 성장과 궤를 같이해온 순복음교회 60주년 슬로건은 '고난과 영광'이다. 이 교회의 지난 시간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가 있을까.

이 목사를 만난 건 지난 8일 오전 여의도 교회 집무실에서였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집무실 한복판 책상엔 시카고트리뷴 영자지와 통일 관련 서적 여러 권이 놓여 있었다. 미국에서 20여년 목회활동을 했고 방북 경험이 세번이나 있는 이 목사는 한반도 이슈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또한 집권층을 향해 잘된다고 생각할 때 몸을 낮춰 반대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이전 정부와 똑같은 길을 갈 것이라며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그 자체로 기적이다. 담임목사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다.

▲하나님의 은혜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으로써 이해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다. 순복음교회는 긍정적인 신앙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 축복으로 나아간 희망의 신앙이 있었다. 기존 장로교회가 준엄한 하나님 목소리를 강조했다면 조용기 목사님은 위로와 격려의 하나님을 전했다. 구약의 권위보다 신약의 예수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 정신이 교회 정체성이 됐다.

―사회구제활동을 맹렬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북교류도 활발하다. 지금 평양에 심장병원 건립을 추진 중인 걸로 아는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양에 조용기심장병원 공사를 시작했다. 8층, 260병상 규모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공사가 멈췄다. 그러다 몇달 전 북쪽 고위관료로부터 재개 의향서가 들어왔다. 정부와 더 논의할 게 있긴 하지만 연내 공사 재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북측이 강하게 희망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번이나 공개석상에서 약속받았다.

―일방적인 북한 퍼주기 비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북한에 아무리 퍼줘도 그 인프라는 대한민국 통일된 체제 속에 들어온다. 먼훗날로 보면 투자다. 투자는 우리가 선점하는 게 낫다. 그러지 않으면 막대한 북한 지하자원을 노리는 중국이 치고 들어온다. 북한을 위해 돕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대북활동의 장기목표가 있을 것 같다.

▲인도주의적 길을 열어놔야 북한에 복음 들어가는 게 도움이 된다. 진정한 통일은 사상적 괴리를 좁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괴리를 무너뜨리는 힘이 신앙이다. 김일성 사상은 상당부분 기독교에서 차용됐다. 북한이 남한과 같이 한민족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으려면 북한에 기독교가 들어가 신앙으로 벽을 허물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부딪힐 때 무너진다. 복음이 북한에 먼저 들어가 해방 전 있었던 3500개 교회가 재건되면 진정한 통일의 날이 올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시선이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세번이나 방북 경험이 있으신데,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나.

▲동질성 회복이 우선 필요하다. 김일성 전 주석은 지금도 북한에선 신이다. 완벽히 통제된 사회인데, 평양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계다. 도로 상태부터 다르다. 지금도 산에 있는 나무를 마구 베어 집에서 불을 땐다. 그들의 가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제 국제사회가 북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북·미 회담 후 많은 구제·구호물자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평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 상황은 어느 때고 편안한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이 때문인지 한국 사회는 늘 고단하다.

▲지금 정부에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때가 없다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잘 만들어진 경제지표가 전부가 아니다. 최근 무허가촌, 서울역 쪽방촌으로 집중 심방을 다녔다. 쪽방촌 방은 두세 사람 앉으면 끝인 곳이다. 탈출구도 없어, 불이 나면 방법이 없다. 정부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곳곳이 사각지대다. 정부가 이런 걸 모른 척하고 있다. 빽 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게 정치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어떤 해법이 있다고 보나.

▲진보·보수, 동서, 노사 갈등과 분열, 부의 양극화 문제는 정말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교묘하게 이를 이용한다. 지금은 완전 좌클릭해서 여론몰이를 하는데, 나중에 역풍이 온다. 계속 보수가 죽을 쑤고 있지만 영원히 좌가 우위일 순 없다. 낮은 이들의 편에 서지 않으면 집권층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지도자들은 잘될 때 반대편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이런 쓴소리를 놓치면 무너진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진짜 힘은 다 내려놓을 때 더 강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평소 주장해온 부자들의 사회환원 캠페인과 비슷한 이야기로 들린다.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된 건 기부문화 덕분이다.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이런 분들은 2010년부터 재산 50% 내놓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 건강하실 때 매년 2조원씩 사회를 위해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 있다. 우리 대기업들 총수들이 재산 절반은 아니어도 10분의 1만이라도 사회에 내놓으면 정말 우리나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 오너들이 이런 제안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미국에서 이런 게 가능한 건 기독교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섬김, 나눔 정신이 있으니까. 그리고 기부에 대한 사회혜택도 체계화되어 있다. 우리도 그런 구조로 가야 한다. 삼성, 현대차, SK가 본을 보이면 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최태원 회장은 조만간 만날 예정이다. 앞장서서 이런 걸 하시라고 말할 작정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이렇게 나서면 사회로부터 절로 존경을 받게 된다. 재벌해체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부의 편중 때문이다.

―기념 슬로건 '고난과 영광'의 대표적 장면을 지난 60년 역사에서 찾아본다면.

▲1980년대 초반 간암을 앓던 장로교회 장로님 한 분을 조용기 목사님이 기도해 잠시 회복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 후 10년간 예장통합 측과 사이비 논쟁을 겪었다. 결국 긴장관계는 완전히 풀렸지만 그 경험은 고난이었고 동시에 영광의 발판이었다. 10년 장로교측 견제로 우리는 신학적 정비를 할 수 있었고, 대형교회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갈등은 결국 영광이 된 셈이다. 고난 중에 내실이 다져진다. 고난은 축복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향후 10년의 비전은.

▲개별 성도들의 신앙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를 향한 섬김, 나눔, 희생에 앞장서고 싶다. 사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힘든 상황일 때 교회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자는 게 우리 비전이다. 그러면 사회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이영훈 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약력 △64세 △연세대.한세대 신학 학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 석사 △템플대 대학원 종교철학 박사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목사 △한세대 신학과 교수 △미국LA나성순복음교회 목사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교회총연합회 공동대표
이영훈 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약력 △64세 △연세대.한세대 신학 학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 석사 △템플대 대학원 종교철학 박사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목사 △한세대 신학과 교수 △미국LA나성순복음교회 목사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교회총연합회 공동대표

조용기 목사 후계자로 선출 10년째 순복음교회 이끌어

이 목사는 집안 4대가 기독교 신앙인이다. 평양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 교회를 지을 때 이 목사 증조부는 직접 산에서 나무를 베어 교회 건축을 도왔다. 평양 미싱협회 이사장을 지낸 조부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강양욱의 핍박에 못이겨 가족을 이끌고 월남했다. 김일성의 방계혈족인 강양욱은 기독교인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을 신격화한 인물로, 김일성 생전 내내 부주석을 지냈다. 조부는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고, 이런 시간이 이 목사 신앙의 기초가 됐다.

부친은 조부의 미싱사업을 이어받았다. 이 목사는 목회의 길로 가지 않았다면 자신도 사업가가 됐을 거라고 했다. "멋있게 돈을 벌어 좋은 일에 펑펑 돈을 썼을 겁니다. 진짜 부자는 돈을 잘 쓰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이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되기까지 세 차례 투표를 거쳤다.
이런 선출방식은 여전히 세습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참고할 대목이다. 당시 1차 투표에서 후보에 오른 목사는 총 7명. 이들을 상대로 교회 당회를 대표하는 150명 장로가 3명을 뽑았고, 다시 전체 장로 900명이 2차 투표를 했다.
1, 2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이 목사는 그후 1년반 동안 담임목사 서리로 일한 뒤 전체 성도를 대상으로 진행된 찬반 방식의 3차 투표를 통해 2008년 담임목사로 최종 확정됐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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