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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근로시간 단축도 돈으로 땜질하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7 17:03

수정 2018.05.17 17:03

고용보험기금에 또 손대.. 남 돈으로 정부는 생색만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보완책을 내놨다. 17일 이낙연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다. 중소기업이 조기에 근로시간을 줄이고, 채용을 늘리는 모범을 보이면 1인당 최대 월 1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종업원 300명이 넘는 제법 큰 기업에도 1인당 최대 월 60만원을 준다. 근로시간이 줄면 자연 임금이 준다. 이때 임금을 보전하는 데도 돈을 쓴다.
이렇게 쓰는 돈이 5년간 4700억원으로 추산된다.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에서 나온다.

정부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 일단 이상에 치우친 정책을 강행한다. 그 뒤 부작용이 예상되면 돈으로 메운다. 최저임금이 그랬고, 이젠 근로시간 단축이다. 최저임금 보완책은 예산이고,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보험기금이다. 예산이든 기금이든 납세자 주머니에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고용보험기금은 회사와 종업원이 절반씩 낸다. 정부는 그 돈으로 생색내기에 바쁘다.

근로시간 단축은 명분이 근사하다. 한국인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회는 지난 2월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수십년간 이어온 관행을 한꺼번에 뜯어고치자니 소리가 요란하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손볼 것을 제안했다. 일감이 없을 땐 쉬고, 그 대신 손이 바쁠 땐 주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폭넓게 허용하자는 얘기다. 버스업계는 운행감축을 걱정하고, 건설업계는 공사 차질을 우려한다. 하지만 정부는 진짜 필요한 보완책은 외면한 채 돈 쓰는 일에만 힘을 쏟는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다.

고용보험기금은 화수분이 아니다. 일자리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부가 손을 대는 바람에 머잖아 적자가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바꿔 내년부터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현행 1.3%에서 1.6%로 올릴 계획이다.
중기 현장에선 "근로시간 단축을 무작정 추진하는 것은 중기 망하라는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낙연 총리는 17일 "정부는 업계·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의 당부는 립서비스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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