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성희롱, 욕설, 폭언, 견디다 견디다… 우울증에 입원하기도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7 17:27

수정 2018.05.17 22:21

[fn스포트라이트-일상 속 갑질]<2> 감정노동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사
폭언은 일상.. “추운데 팬티 몇장 입냐” “소음 해결 안하면 살해한다”
웬만한 욕설은 견디지만 매순간 감정소모에 지쳐 참는 게 직업
고객인척 속여 상담사 평가
성희롱, 욕설, 폭언, 견디다 견디다… 우울증에 입원하기도

"오늘 날씨 추운데 팬티 몇 개 입어야 해요?"

120다산콜재단 김모 상담사(42.여)는 상담경력 10년 이상인 베테랑이지만 이런 전화는 매번 수치스럽다. 하루 평균 민원전화 70여건을 응대하면서 웬만한 욕설은 견딜 수 있지만 때로는 마음이 답답하다. 김 상담사는 "별의별 사람이 많은데, 야한 노래 가사를 찾아달라고 강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폭언과 협박성 전화도 빗발친다. 김 상담사는 "공사장 소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흉기로 누군가를 찔러 상담사에게 책임을 덧씌우겠다는 협박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녀의 직장 동료는 성희롱과 욕설, 폭언 등이 섞인 민원인의 전화로 우울증을 앓다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해 민원인이 성희롱 발언 시 곧바로 전화를 차단할 수 있다. 욕설은 3회 경고한 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 상담을 진행하다 차단하는 터라 마음이 편치 않다.

교묘하게 상담사를 괴롭히는 민원도 있다. 전화를 끊기 애매해 대응이 더 어렵다. 상담사에게 직접 욕은 안 하지만 관공서를 비난하거나 하루 수십건 같은 민원을 넣기도 한다. 새벽이면 술 취한 사람들이 콜센터에 횡설수설 전화를 건다. 그는 "공공기관 콜센터이다 보니 자기 집 지붕을 고쳐달라는 막무가내 민원도 들어온다"며 "감정 소모가 많은 직업"이라고 전했다.

120다산콜재단의 성희롱, 욕설 등 악성민원은 줄어들고 있지만 억지 주장 등 강성민원은 늘어나고 있다. 재단에 따르면 2012년 악성민원은 5879건, 강성민원은 2690건인 데 비해 지난해 악성민원은 762건, 강성민원은 7833건이다.

■"폭언은 일상"

17일 잡코리아와 알바몬에 따르면 2016년 콜센터 상담사 11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5%가 '고객의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했다. 언어폭력 경험자 중 74%가 '참고 넘긴다'고 응답했다.

콜센터 상담사는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은 주로 사람을 대하는 업무를 하는 중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 다른 특정 감정을 업무상 요구하는 근로형태를 말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숨기고 늘 친절해야 하기 때문에 콜센터 상담사들은 언어폭력에 노출돼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콜센터 업무구조가 폭언을 견디면서도 수화기를 붙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실적에 통화횟수나 통화시간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이정훈 감정노동보호팀장은 "카드사 콜센터 직원들은 가입실적 혹은 유지실적을 내야 한다. 고객이 전화로 계약을 해지하려 해도 직원이 이를 방어하기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업무압박으로 인한 감정노동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태 한국CS경영아카데미원장은 감정노동을 고착화시키는 기업 프로세스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원장은 "고객인 척 가장해 전화를 거는 미스터리 콜로 상담사를 압박한다. 사물에게도 존칭을 쓰는 과도한 친절도 기업문화의 일환"이라며 "하루 몇 콜을 응대해야 하는 평가표가 있다. 이를 만족시키면서 상담 품질도 유지해야 하기에 콜센터 직원은 심적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감정노동 보호 노력 실효성은?

지난 4월 공포된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 2'에는 감정노동자가 고객에게 폭언을 들으면 업무중단 또는 전환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에게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 조치를 요구한 노동자에게 해고 및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노동조합 측은 법안을 환영하지만 미비한 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종 감정노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산안법에는 세부적인 사업주의 의무 조치사항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정하겠다는데 이에 대한 벌칙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비정규직 노동자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콜센터 등 서비스업은 용역, 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가 나올 수 있다"며 "원청기업의 하청기업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의무를 규정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감정노동을 보호하려는 변화도 있다.
지난 9일 서울시는 본청과 사업소, 투자출연기관 감정노동자를 위해 지자체 최초로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준형 팀장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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