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인구 90억명 시대 성공의 조건

지령 5000호 이벤트
인류의 삶의 형태는 기원후 100년쯤 인구 2억명 시대부터 1800년 인구 5억명 시대까지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1850년 인구가 10억명을 넘어서고 현대과학의 기초가 만들어지면서 1차 산업혁명을, 1925년쯤 20억명 시대를 지나며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한 2차 산업혁명을, 1970년쯤 40억명을 돌파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3차 산업혁명을 시작해 2017년 75억명 시대를 거치면서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인류는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례해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켜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고, 그때마다 이를 주도하는 국가가 있었다.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성공했던 것은 중점산업을 농업에서 경공업으로 바꿔갈 기술발전이 뒷받침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사회문제를 민주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국민적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산업혁명을 미국과 독일이 주도했던 것은 새로 등장한 에너지원인 전기와 석유 그리고 핵심 산업재료인 철강 생산에서 큰 진보를 이뤄냈고, 이를 응용한 제품 개발에 개인과 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개발의 성과가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사회적 구조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 역시 미국이 주도했던 것은 새로운 창의적 도전을 용인하는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국가가 필요한 정보화 인프라를 적극 지원하고, 이를 응용한 상품 개발과 생산에 산학연이 일체가 돼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2045년 이전에 달성될 90억명 시대를 맞기 위해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것들과는 달리 그 주도의 주체도 그 수혜의 범위도 일부 지역이 아닌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든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50여년에 걸쳐 진행된 3차 산업혁명 기간 인구 5000만명을 넘기면서 세계 9위 교역국가로 성장했는데, 이는 국가 주도적인 기업 지원과 변화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국민의식 그리고 높은 교육열이 만들어낸 과학기술 인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일은 어려워졌고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만들고 연구할 전문인력 육성도, 유입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 창업과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 국가 미래를 염려스럽게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노력의 출발은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분야에서 세부적인 것까지 설계하고 지원하며 감독하면 개별기업이든, 대학이든 민간이 창의적 도전이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게 된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임금을 지원하는 일보다 정보화 인프라를 확장해주고 새로운 사업과 산업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출석을 잘 부르고 있는지, 취업을 얼마나 시키는지로 대학을 평가하려 하지 말고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교육을 위해 각자의 특성에 맞게 투자하도록 지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부터 시대에 맞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아 먼저 바뀌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인구 90억명 시대에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를 속히 정하고 정부도, 민간도 그 역할을 찾아 지체 없이 변화를 시작하자.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