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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라돈침대와 집단소송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9 17:06

수정 2018.05.29 17:06

[여의나루] 라돈침대와 집단소송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불리는 라돈침대 사태로 소비자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침대에서 우리는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고, 인체와 침대는 밀접하게 직접 접촉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건강에 대한 우려가 큰 요즘 라돈이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란 점을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진침대의 라돈 검출 논란은 지난 1월 한 주부가 휴대용 라돈 측정기를 우연히 침대 위에 올려놓으면서 시작됐다. 갑자기 침대 위에 올려놓은 휴대용 라돈 측정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라돈 측정기에 기록된 라돈 수치는 기준 허용치의 10배를 넘었다.
이 주부가 방송사에 제보하면서 라돈침대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라돈침대가 논란이 되자 제조사인 대진침대는 라돈이 검출되는 침대 매트리스를 새 매트리스로 교환해주고 있다. 그런데 교환된 새 매트리스에서도 방사성물질이 10배가량 높게 측정됐다고 한다.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는 침대 매트리스, 그에 대한 제조사의 대처방법, 모두 놀랍기 그지없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언론을 도배하던 때가 바로 2년 전인 2016년 5월이다. 그런데 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는 것일까. 기업이 침해적 행위를 해서 얻는 이익이 정상적 기업활동을 하는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타인이나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기업행위를 했을 때는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설사 그것으로 해당 기업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말이다.

현재 대진침대 소비자들은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만 원고가 된다. 언론에서는 라돈침대 피해자 집단소송이라고 표현하나, 엄밀하게 말하면 집단소송이 아닌 공동소송이다. 결국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여러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소송해서 승소하면 모든 피해자가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현재 증권관련 일부 분야에만 인정됨)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 분주한 피해자들이 일일이 소장을 작성하고 변호사와 상담하고 법원에 출석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한 경우에도 소액의 금액만 피해액이나 위자료로 인정하는 현재의 인색한 손해배상 체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제조물책임법에 일부 도입돼 올해 4월 19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소비자가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 발생한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는 내용이다. 이번 라돈침대 사건이 새로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법원이 현명하게 판단해주기를 기대한다.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대기업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유해성분이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했고, 여주인공인 에린이 거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주도해 피해자들이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손해배상을 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 후 해당 대기업은 모든 공장에서 해당 유해성분을 사용하지 않으며, 오염물질 누출 예방조치를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미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피해자를 보호하는 적극적인 법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 법과 법원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인가. 국가가 선량한 시민보다 이기적인 기업을 더 보호하는 것은 아닐까.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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