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페이스북, 靑 소통창구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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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게으름을 즐기고 있던 지난 주말 저녁 페이스북 알람이 울렸다. 휴대폰을 집어들었더니 청와대 페이스북은 대통령이 긴급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고 알려줬다.

TV 뉴스채널과 인터넷 포털에는 아직 2차 남북정상회담 속보가 없다. 5분여 뒤 TV에 속보 자막이 뜬다.

나중에 들으니 26일 저녁 7시50분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2차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카카오톡으로 전달됐고, 페이스북에는 52분에 소식이 올라왔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데 족히 10분 이상은 걸렸을 테고, 페이스북은 52분에 실시간 알람을 울렸으니 국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처음 들은 셈이다.

이 대목에서 잠깐 따지고 싶은 게 있다. 페이스북이 우리 청와대의 '공식적인 입'으로 안방을 차지한 건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월 페이스북에 대해 3억9600만원 과징금을 결정했다.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회사들과 통신망 사용료 협상이 원활하지 않다며 접속경로를 무단으로 바꿔 이용자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페이스북이 무단으로 접속경로를 바꾸는 바람에 족히 수백만명의 한국 페이스북 사용자는 평소 친구와 소통하던, 청와대의 반가운 소식을 듣던 페이스북에 접속할 수 없는 불편을 겪었다.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 당했다.

최근 페이스북은 방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방통위 제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다. 페이스북의 행정소송 소식을 듣고 한동안 속을 끓였다. 화가 났다. 한국 이용자들의 불편 따위는 페이스북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구나 싶어서다. 한국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겪은 불편을 생각하면 방통위의 3억9600만원 과징금은 솜방망이 처벌 중에서도 최고 수준인데 페이스북은 한국 이용자들에게 사과는 고사하고 그 과징금조차 수용할 수 없다는 자세다.

그런데 우리 청와대가 한국 이용자들의 불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 페이스북을 공식 소통채널로 인정하는 것일까? 청와대 실무자들이 신중히 고민해 줬으면 한다. 페이스북이 청와대와 국민을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 청와대가 우리나라 서비스를 활용해 줬으면 좋겠다. 한국에 세금 내고 한국인 고용하는 서비스를 키워 국민과 소통하면 좋겠다.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페이스북이 한국 이용자의 불편과 이를 문제 삼는 한국 정부의 명령을 추상같이 여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청와대가 공식 소통창구로 애용하고 대통령을 사랑하는 수십만 국민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과 소통하는데 페이스북이 방통위의 제재, 한국 소비자의 불편 따위를 엄중하게 받아들일 리 없지 않은가 말이다.

청와대 소통 실무자들이 페이스북의 편리함만 보느라 정작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아는 페이스북의 오만함은 일부러 모른 체하는 게 아닌지 신중히 생각해 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