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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한국 자동차산업 시련과 도전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31 16:47

수정 2018.05.31 16:47

[여의나루] 한국 자동차산업 시련과 도전

1970년 대학 초년생이 되어 서울 생활을 시작할 무렵 하루 세 끼만 챙겨먹을 수 있어도 다행이었지만 퍼블리카라는 차를 선망했다. 그런데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살림살이 이야기를 듣고 장래의 내 처지에 대입해보니 결론은 아무리 아껴도 평생 그 차를 가져보기는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치고 1970년대 말 첫 근무지인 유럽에서 한두 대씩 보이던 포니 차가 얼마나 반갑고, 그 차를 운전하는 현지인이 정말 고맙게 생각되던 때도 있었다. 4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자동차산업은 생산 규모로 세계 5위를 차지하게 됐고 그 덕분에 나도 퍼블리카보다 훨씬 좋은 차를 운전하고 다닌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자동차산업은 한마디로 성공 스토리였다.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파급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제조업 일자리의 12%를 직접고용하고 있다.
또한 한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므로 제작사는 물론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가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제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자동차산업은 지금 시련 속에 도전을 맞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줄곧 우리 자동차시장의 개방을 요구해왔다. 수입차는 1995년 시장점유율이 1.5%에 미치지 못하는 2만대 수준에서 작년에 24만대, 올해는 25만대 이상 수입 예상되어 18%대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외국투자업체가 차지하는 비중까지 빼고 나면 순국산차의 시장점유율은 60%대로 쪼그라들었다. 일본에서 수입차 비중이 5% 정도인 데 비하면 이제 한국 자동차시장이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간 관세, 세제, 표준, 소비자 인식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 온 것은 미국인데 지금 개방된 한국 자동차시장에서는 유럽 브랜드가 주종이다. 미국산도 6만대 정도 수입돼 10년 동안 거의 10배나 증가했지만 그중 4만대는 유럽 또는 일본 브랜드의 미국산 차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시장을 내어줬는데 우리 수출은 올해도 작년보다 1.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대미 수출도 2015년 176만대에서 2017년 147만대로 줄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등장한 중국에서도 우리 점유율은 2014년 9%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계속 하락, 올해 들어서는 3.8%로 떨어져 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첫째, 한번 더 뛰어오를 수 있는 기술력 제고와 차세대 탈것으로 등장한 전기차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산업정책적 방향 설정 및 지원이 절실하다. 둘째, 노사관계의 불협화와 불안정으로 우리 제작사의 생산성이 뒤처져 있다는 것은 여러 지표에 나타난 지 오래다. 이 문제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노사가 깊이 인식하고 상생의 답을 찾아야 한다. 셋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에 대해서도 국가안보를 내세워 25% 관세부과 검토를 언급했다. 지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우리 측은 안전기준 및 경트럭에 대한 관세 25% 폐기일정의 20년 추가 연장 등을 양보한 바 있다. 철강에서와 같이 수입쿼터를 정하는 식의 관리무역 행태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소비는 중요한 경제활동이므로 바다 건너온 물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비용과 효용이라는 경제원칙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위기는 극복하기 위해 있고, 위기 속에는 반드시 기회도 있다.
우리 자동차산업이 다시 한번 역동의 에너지를 발산해내기를 기대해본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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