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재계 3.0시대 성공방정식 찾는 젊은 총수들]아버지式 리더십으론 한계… 현장경영으로 승부 걸어야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3 17:14

수정 2018.06.03 21:16

上. 4050후계자, 그룹을 장악하라
혈연·줄서기 버리고 포괄적 리더십 구축을..상향식 문화 정착시키고 미래 먹거리 발굴해야
[재계 3.0시대 성공방정식 찾는 젊은 총수들]아버지式 리더십으론 한계… 현장경영으로 승부 걸어야
[재계 3.0시대 성공방정식 찾는 젊은 총수들]아버지式 리더십으론 한계… 현장경영으로 승부 걸어야

한국 경제를 선두에서 이끄는 재벌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잿더미 위에 창업해 '한강의 기적'을 일군 국내 대표기업 창업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창업주를 이어 1980년대 이후 기업을 물려받아 글로벌 반열에 올려놓은 2세 경영인들도 서서히 무대 뒤로 퇴장하고 있다. 이제는 30대 그룹의 60% 이상이 오너 3~4세 경영으로 넘어갔거나 분수령에 직면했다.

이른바 '재계 3.0 시대'다. 재계 3.0 시대는 오너 1~2세 시대와는 경영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선진 기업들을 빠르게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패스트 팔로'(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공했던

할아버지, 아버지식 경영으로는 더 이상 글로벌 무대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 남보다 앞선 기술과 시장판도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퍼스트 무버'(시장 개척자)의 경영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오너 3~4세 경영인들은 기업문화도 상명하복식 수직적 구조에서 경계 없는 소통과 협력 기반의 수평적 구조로 전환기에 서있다.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는 지배구조의 난제도 당면한 현실이다.

선대 회장들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오너 3~4세 경영인들에게 결코 녹록지 않은 시험대가 놓여 있다. 이들의 성공적 안착 여부가 한국 경제의 미래상을 바꿀 수도 있다.

이에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 3~4세 경영인들의 현주소와 리더십, 지배구조 등 그룹을 둘러싼 복잡한 경영현안들을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0일 23년간 이끌었던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며 LG그룹은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빨리 '오너 4세' 경영체제를 서두르고 있다. 구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40)가 10대 그룹 중 최연소 총수 자리에 조만간 오르게 되면 재계의 오너경영 시계는 40~50대 중심으로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LG뿐 아니라 삼성, 현대차, 한화, 현대중공업, 효성, OCI 등은 젊은 오너 경영인들이 이미 그룹을 대표하거나 머지않아 총수에 오를 채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당장 넘어야 할 산들은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 선대 회장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조직안정화를 조기 달성해야 할 숙제가 놓여 있다. 정부 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지배구조 개선도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선대 회장들과 차별화된 리더십을 기반으로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시험대도 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오너 3~4세 경영인들은 개방적 리더십과 상향식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영감각을 높이기 위해 현장경영에 승부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젊어진 총수, 재계 판도 급변

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총수체제가 사실상 40~50대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10대 그룹 중 40~50대 총수 체제를 구축한 그룹은 삼성과 SK를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재용 부회장(50)이 3년 넘게 총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초 삼성의 동일인을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하며 오너 3세 경영체제를 공식화했다. SK는 오너2세로 분류되는 최태원 회장(58)이 최종현 회장이 별세한 1998년 총수에 올라 올해로 20년째 그룹을 이끌고 있다.

LG는 이달 말 지주사인 ㈜LG 임시 주주총회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사내이사에 등극하면 사실상 총수에 오르게 된다.

총수는 아니지만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48)도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16년 말 국정농단 청문회에 참석한 이후 공개석상에 1년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 부회장은 미국 전자쇼(CES), 뉴욕모터쇼 등 글로벌 경영에 적극 참여하면서 차기 총수로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10대 그룹은 아니지만 조현준 효성 회장(50)도 지난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40대 총수의 길을 열었다. 한화큐셀 김동관 전무(35),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36) 등은 승계가 유력해 경영 전면에 나선 상황이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총수의 나이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며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우 구글이 40대 후반, 페이스북은 30대 초반,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은 20대 오너 경영인들이 대세인 걸 볼 때 젊다는 건 강점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경영 시험대…'조직 혁신과 미래 먹거리'

전문가들은 오너 3~4세 경영인들의 당면과제를 조직혁신을 이끌 '리더십'과 '미래성장동력 발굴'로 압축하고 있다. 윤종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젊은 총수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포괄적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 구축이라고 본다"며 "지금까지 주요 그룹들은 혈연으로 뭉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폐쇄적 리더십(exclusive leadership)으로 조직이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오너 경영인은 혈연이나 줄서기를 극복하고 회사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진정한 가족 구성원으로 포함시키는 포괄적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조직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혈연 중심의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기업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가 경영을 승계받더라도 혈연을 뛰어넘는 조직의 사명(mission)이 명확해야 한다"며 "조직의 목적이나 사명이 분명하지 않으면 승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혈통 중심으로 기업이 가게 된다"고 밝혔다.

상향식 기업문화 구축도 젊은 총수들의 성패를 가를 중요 열쇠로 지적됐다. 이경전 교수는 "오너 경영인들은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며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반대에도 앱스토어를 성공시킨 건 상향식 문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너 경영인은 회사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강점으로 살리고,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디어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부회장 등이 국내보다는 해외출장 행보에 집중하는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들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하만 인수 같은 성장동력 차원의 대형 인수합병(M&A)이 단절됐다"며 "이 부회장이 출소 후 유럽·미국·중국 등 해외출장에 집중하는 건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김진국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상은 빨리 변하니까 배우는 데 게을리 하면 안될 것"이라며 "총수들이 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끊임없이 현장 가서 보고 토론하고, 받아들여야 살아남는다"고 조언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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