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졌.잘.싸.' 월드컵을 기대한다


축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 국민 모두는 4년에 한 번 열광적 축구팬이 된다. '지구촌의 축제'로 불리는 월드컵 덕택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은 16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살아 있다.

더러는 "축구가 뭐라고…"라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축구 경기는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생산성이라곤 1도 없는 공놀이"(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팀 감독)는 농구뿐만 아니라 축구에도 전적으로 해당되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2002년의 기적 이후 우리 가슴에 새겨진 '자신감'도 그중 하나다. 단단한 조직력과 끈끈한 지구력, 굽힐 줄 모르는 정신력, 용암처럼 터져나오는 열정은 축구대표팀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말들이 됐다.

올해 초 베트남의 U-23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대회에서 준우승을 일궈낸 '박항서 매직'도 같은 맥락이다. 대회 직후 현지 출장길에서 만난 베트남인들은 한결같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던 베트남인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평가도 있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오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로 막을 올린다. 우리나라는 18일 스웨덴, 24일 멕시코, 27일 독일과 차례로 경기를 치른다. 순수 아마추어의 눈에도 한국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은 기적에 가깝다. 1승 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도 같은 얘기를 종종 나눈다. 친구는 "이렇게 기대가 되지 않는 월드컵은 처음"이란다. "언제는 우리가 월드컵을 기대할 만한 실력이었냐" "대한축구협회가 하는 꼬라지를 보고도 무슨 기대를 하느냐"고 반박이 나온다.

객관적인 전력상 우리나라는 상대팀들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1위가 이를 증명한다. 독일은 1위, 멕시코는 15위, 스웨덴은 23위로 우리보다 한참이나 윗자리에 있다. 월드컵 본선에 9회 연속 진출했다지만 우리가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은 겨우 두 차례에 불과하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을 비난하는 (나를 포함한) 팬들의 목소리가 높다. 실험정신이 지나치게 투철한 신태용 감독이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경기를 열흘 남짓 앞두고 쓴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다. 어차피 그들은 눈감고, 귀 막고 있을 텐데 말이다. 정작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축구협회는 비판과 비난에 면역이 생긴 듯한 모습이다.

오는 18일 오후 9시에는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두고 축구 경기를 '있는 그대로' 즐겨보려 한다.
그래도 스웨덴을 응원하진 못하겠지만.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국민이, 팬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다. 마지막으로 그것만이라도 기대해보련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