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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은행 채용 모범규준, 올바른 처방일까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6 17:15

수정 2018.06.06 17:15

이젠 입사시험까지 간섭..자율에 맡기는 게 대원칙
은행연합회가 5일 은행 정규직 채용절차를 담은 모범규준안을 내놨다. 앞으로 은행들은 이 규준안을 채용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 서류·필기·면접도 이 틀을 따른다. 은행연합회는 규준안이 자율규제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내 은행 가운데 규준안을 어길 강심장은 없다.

지난 몇 개월 간 은행권은 채용비리로 홍역을 치렀다.
은행은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당연히 공정한 채용이 이뤄져야 한다. 누가 부탁했다고,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남자라고 성적 미달자에 특혜를 줘선 안 된다. 지난해 가을 감사원은 금융감독원 채용비리를 적발했고, 이후 불똥은 여러 은행으로 튀었다. 은행연합회는 그 대책으로 석달간 모범규준을 정비했다.

그 자체론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다만 채용 가이드라인을 이런 식으로 모든 은행에 적용하는 게 과연 올바른 처방인지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규준안은 산업·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 물론 신한·KB국민·KEB하나은행 같은 민간 시중은행에도 적용한다. 한국씨티은행 같은 외국계, 카카오뱅크·케이뱅크 같은 인터넷전문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무점포 인터넷은행은 금융 혁신이 생명이다. 당연히 인재를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한 덩어리로 묶였다. 규준안에서는 한국 금융에 짙게 밴 관치의 냄새가 풍긴다. 모범규준은 일종의 사전규제다.

만약 전자산업 관련 협회가 회원사에 채용 모범규준을 제시한다고 가정해 보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꼴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뽑고 싶은 인재는 다 다르다. 법과 상식을 어기지 않는 한 선택권은 기업 재량에 맡기는 게 좋다. 미국의 JP모간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가 공통 가이드라인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기해천수(祁奚薦수)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에 기해는 진(晉)나라 왕에게 철천지 원수를 추천했다. 그 원수가 죽자 다음엔 자기 아들을 추천했다. 기해는 오로지 능력만 봤다. 따라서 누굴 추천하든 거리낌이 없었다.
기업 입사 시험은 대학입시나 공무원 시험이 아니다. 어떤 인재를 뽑든 자율에 맡기는 게 원칙이다.
대신 당국은 사후적으로 법을 어긴 기업을 엄하게 처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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