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정대균 기자가 만난 사람]‘한국 → 일본 → 한국’ 12년 투어생활… “변화 두려워 않는 성실함 덕분”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7 17:30

수정 2018.06.07 17:30

국내 무대 복귀 3년째 나다예 프로, 8년 일본 생활 접고 귀국 선발전 재수 끝 작년 시드 받아
30대 초반이지만 체력은 자신, 20대 초반 후배들 장타 볼때면 비거리 늘었으면 하는 부러움도
아직 메인스폰서 없지만 서브 후원사 모자 쓰고 홍보
日대회 우승 부상으로 받은 10년치 초콜릿 고아원에 기부
선수 생활 가장 뿌듯했던 순간, 국내서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지난 2008년 일본에 진출했던 나다예 프로는 2016년 JLPGA 활동을 접고 KLPGA투어로 'U턴'했다. 현재 메인 스폰서가 없는 나 프로는 서브 후원사 스릭슨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활동한다.
지난 2008년 일본에 진출했던 나다예 프로는 2016년 JLPGA 활동을 접고 KLPGA투어로 'U턴'했다. 현재 메인 스폰서가 없는 나 프로는 서브 후원사 스릭슨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활동한다.

나다예 프로가 동갑내기 절친 박유나(오른쪽)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다예 프로가 동갑내기 절친 박유나(오른쪽)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귀포(제주도)=정대균 골프전문기자】 그를 보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어느 봄날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 이름 모를 한 떨기 야생화가 연상된다. 무수한 날들을 햇볕에 노출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골프선수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우윳빛 피부에 다소 가냘프게 보이는 체격 때문에 아마도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는 지극히 단편적인 편견이었음을 금세 알게 됐다. 외모와 달리 어떤 시련도 이겨내고 남을 '강단'이 있는 선수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돌아와 KLPGA투어 복귀 3년째를 보내고 있는 '제주 비바리' 나다예(31)다.

올해로 12년째 투어 생할을 하고 있는 나다예는 팬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투어에서 많은 우승이 없는데다 국내 무대보다는 일본에서 활약한 기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2006년 투어에 데뷔한 그가 프로 무대서 거둔 우승은 두 차례다. 첫 우승은 2007년 KLPGA투어 빈하이 레이디스, 그리고 두번째는 201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메이지초콜렛컵이다. 비록 우승은 두 번 뿐이지만 그는 투어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실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나다예는 KLPGA투어에 데뷔해 2년간 활동하다 2008년 일본으로 전격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투어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적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일본 진출 초기에는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서서히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5년만에 우승하면서 팬들도 많이 생겼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2016년 갑작스레 KLPGA투어로 'U턴'을 단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한 것은 당연했다. 왜 그랬을까. 나다예는 "국내 복귀 시점 2~3년 전부터 '남느냐, 가느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무엇보다도 시드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이 가장 컸다. 게다가 8년여의 일본 생활에서 이뤄놓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아까웠다"면서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질적, 양적으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KLPGA투어가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고 국내 복귀 배경을 설명했다.

비록 국내 투어로 돌아오긴 했지만 일본에서의 8년 생활은 나다예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스윙 매커니즘을 가장 중요시 했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그보다는 볼이 날아가는 구질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마디로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고 스윙을 가다듬은 것이다. 그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어서 지금도 그 방법으로 연습하고 있다"면서 "또 하나는 쇼트 게임, 특히 그린 주변 쇼트 게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다예의 국내 복귀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시드전을 통해 2016시즌부터 투어에 합류했으나 그해 성적이 여의치 않아 시드 선발전 재수 끝에 2017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점차 국내 투어에 적응하면서 지난해 상금 순위 57위로 시즌을 마쳐 2018시즌 시드를 유지했다. 그리고 올 시즌 상금 순위는 현재 44위다.

20대 초·중반이 주류인 투어에서 나다예의 나이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다 '호리호리한 외모 덕에 체력이 약한 건 아닐까'라는 팬들의 보호본능마저 자극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친다. 그는 "체력적으로는 아직은 전혀 문제가 없다. 트레이너가 투어를 함께 하면서 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꾸준히 웨이트를 하고 있다"면서 "다만 현재 240~250야드 정도인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20야드 정도만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갑지 않은 고민도 하게 된다. 그중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가장 번민케 하는 키워드는 '은퇴'와 '결혼'이다. 두 가지 모두 언젠가는 해야할 것들이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나다예는 "친구들이 많이 은퇴를 했다. 그러면서 나도 고민이 커졌다. 하지만 나에게 잘 맞는게 투어 생활인 것 같아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이어 "결혼은 항상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소개팅을 몇 차례 했는데 그 자리 자체가 불편했다"며 "딱히 이상형은 없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나다예는 지금껏 골프를 하면서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 여럿 있다. 우선은 부모님이다. 특히 딸을 위해 천직이었던 교직마저 내던지고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는 아버지 나광철씨(59)의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부족하다. 체육교사였던 나씨는 딸이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사직서를 냈다.

나다예는 "아빠한테 늘 죄송하다. 가급적 많이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빠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늘 감사드린다. 아빠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15년째 도움을 주고 있는 재일동포 김홍주 회장과 핀크스CC다. 김 회장과 나다예의 인연은 김 회장이 고향인 제주도에 핀크스 골프장을 만들면서다. 자신이 고향에 만든 골프장에서 당시 골프 꿈나무였던 나다예가 마음껏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2010년 경영난으로 핀크스CC를 매각하면서도 나다예가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인수 기업인 SK에 적극 요청했고 SK측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 회장은 나다예가 일본서 활동할 당시에도 주거지인 고베 인근에서 대회가 열리면 만사를 제쳐놓고 현장에 직접 나와 나다예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을 격려했다.

스폰서의 후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이다. 나다예는 현재 메인 스폰서가 없다. 메인 후원사가 없을 경우 대부분 선수들은 전면에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쓴다. 그러나 나다예는 다르다. 서브 후원사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활동한다. 그는 "어차피 비어 있는 것, 용품 후원사인 스릭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이참에 자신을 한번 홍보해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나다예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오랜 투어 생활을 거치면서 위기관리 능력과 마인드 컨트롤이 좋다. 그리고 제아무리 힘든 상활일지라도 금세 털고 일어나는 게 강점이다"면서 "그러나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선수가 후원사를 위해 해야할 역할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고 자신을 PR했다.

나다예에게는 지금껏 투어 생활을 하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보람이 하나 있다. 일본 대회 우승 때 부상으로 받았던 10년치 초콜릿을 모두 고아원에 전달한 것이다. 그는 "초콜릿을 받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가슴 뿌듯했다.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지난달 27일 끝난 E1채리티에서 우승 기회를 놓친 것이다. 당시 대회서 나다예는 1라운드 선두, 2라운드 2위에 자리하면서 11년만에 국내 대회 우승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3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는데 그쳐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는 "장타자 틈바구니에 끼어 내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찾아오면 결코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내보였다.

나다예에게도 열정적인 성원을 보내주는 팬클럽이 있다.
고향 제주 사람들이 주축인 '프로골퍼 나다예'다. 이른바 '핫'한 젊은 선수들의 팬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 소수 정예의 팬클럽 회원들의 응원이 힘든 투어 생활에서 큰 활력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친 뒤 서둘러 연습장으로 향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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