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증거인멸 혐의' KAI 임원, 1심서 벌금형 선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KAI 임원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변성환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박모 KAI 실장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사 사건에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타인을 교사할 경우 죄가 성립하지만, 지시를 받은 피교사자도 자기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다는 의사가 있을 때에는 증거인멸교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변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자신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부하 직원 이모씨 등을 교사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면서 "그러나 피교사자인 이씨 등의 회사에서의 지위, 업무내용, 인멸행위 당시 피고인과 이씨 사이의 대화 내용 등을 종합해보면 이씨 등은 자기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박 실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어 "증거인멸 행위는 사법작용에 관한 국가의 심판기능을 저해하는 행위로 엄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회사 임원의 위치에 있던 피고인은 자신이 간접적으로나마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분식회계에 관한 처벌이 두려워 범죄를 저질렀을 여지가 있고, 해당 범죄가 검찰 수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박 실장은 검찰과 금융감독당국이 분식회계 의혹 조사에 나서자 회계 분식과 관련한 중요 증거를 골라낸 후 부하 직원들에게 이를 파쇄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실장은 한국형전투기(KF-X) 관련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KF-사업관리팀과 사업운영팀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KF-X 사업은 2015년부터 2026년까지 약 8조원을 투자해 공군의 기반 전력으로 활용할 전투기 120여대를 국내 연구개발로 확보하는 사업이다. 건국 이래 최대 무기 사업으로 꼽히며 전투기 생산까지 포함해 총 18조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앞서 검찰은 하성용 전 KAI 대표 등의 회계 분식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 실장에게 지난해 8월경 'KF-X 사업 매출 관련 CEO에게 보고한 자료' 등 KF-X 사업 매출 관련 서류에 대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KF-X 사업 운영팀 팀장 이씨는 검찰로부터 같은 내용의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받고, 이를 찾아 박 실장에게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박 실장은 검찰의 수사대상자인 하 전 대표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서류 30~40장을 골라내 이씨에게 "이거는 검찰에 제출하지 않고 빼는 게 좋겠다, 가서 버려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실장의 지시를 받은 이씨는 자신의 부하직원을 시켜 해당 서류를 세절기를 이용해 파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하 전 대표는 KAI가 2013년부터 작년 1분기까지 협력업체에 선급금을 과다 지급하고 자재 출고 시점을 조작하는 방식 등으로 매출 5358억원, 당기순이익 465억원을 부풀린 회계 분식을 하도록 주도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 등) 등으로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