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시장 앞에서 겸손하자

지령 5000호 이벤트

헌법 제119조 제2항의 내용을 요약하면 '정부는 균형 성장, 적정 소득 분배,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다. 이를 무식하게 더 요약하면 '정부는 마음에 안 들면 어떤 시장이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시장이라는 것은 상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 부동산 및 금융시장, 심지어 노동시장까지도 돈이 오고가는 모든 시장을 의미한다.

사실 시장과 정부는 오랜 앙숙이다. 시장은 막대한 힘을 가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약육강식의 사파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관계에서 오른 쪽의 끝은 시장이 정부를 압도하는 자유방임의 자본주의 사회이고, 반대편의 끝은 정부가 시장의 목줄을 쥐는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다. 현재 대부분 국가들은 이 양 극단이 아닌 가운데 어디쯤 위치하고 있다.

시장개입에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준칙이 있다. 첫째,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지금 정부 들어서도 다양한 시장개입이 있었다. 부동산시장, 노동시장 등에 대한 개입이 그것이다. 그러한 개입은 모두 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개인이 사회에 진출해 집을 마련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끝없이 오르는 부동산가격은 정부가 개입해서 반드시 잡아야 한다. 또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저임금 근로자 문제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둘째, 시장개입으로 민간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 의욕이 훼손돼서는 안된다.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왜 이것이 2항보다 앞에 서술돼 있는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계가구의 부채탕감 문제라든가, 근로가 동반되지 않는 정부의 소득보조 정책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장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시장개입을 하지 말자가 아니고 명분이 있으면 하되 어떠한 경우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즉 제어가 안되는 수준의 부작용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의 예가 바로 최저임금제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작년에 비해 16.4% 인상되었다. 수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평균 7%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이렇게 큰 폭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했을 때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그것이다. 물론 잘나가는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께서는 그런 피해가 집중된 계층을 빼고 나머지 계층의 소득이 올랐으니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완벽했다고 주장들을 하신다.

완벽하게 돌아가는 시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시장개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완벽한 시장개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필자가 잘 다니는 병원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의사는 치료하나, 신은 치유하신다.(Doctors Treat, God Heals.)"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필자에게는 마치 이렇게 들린다. 사람이 시장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를 줄여나가는 것일 뿐. 시장 앞에 겸손해라.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