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암호화폐, 음지에 묶어둬선 안된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2 17:47

수정 2018.06.12 17:47

[이구순의 느린 걸음]암호화폐, 음지에 묶어둬선 안된다


지난 10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레일이 해킹 공격을 받아 400억원 가까운 피해를 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암호화폐 거래의 사이버침해 예방을 위한 방침을 내놓은 지 6개월여 만에 발생한 사고다. 코인레일 사용자들은 피해보상 방법도 막막하다고 한다. 금전적 피해를 입은 이용자들이 최대 피해자이니 코인레일은 피해 구제방안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코인레일 해킹사고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 또 다른 당사자는 바로 암호화폐 생태계 아닐까.

모든 상거래의 기본 개념은 신뢰다.
신뢰 없이는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사고는 그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니 결국 암호화폐 생태계가 깊은 상처를 입은 셈이다.

비단 해킹사고만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잠잠할 만하면 들리는 경찰의 거래소기업 수사 소식, 암호화폐 거래를 도박에 비유하는 사법당국의 발표는 암호화폐 자체를 불법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한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내놓고 투자 사실을 말도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국내에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단다. 스스로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사람의 족히 서너배 이상이 실제 투자자일 것이라고 한다. 대놓고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얘기하면 도박이나 사기사건을 벌이는 것쯤으로 비치는 세태 때문에 쉬쉬하며 투자하는 것이란다.

결국 암호화폐 업계와 정부가 함께 암호화폐를 믿을 수 없는 어둠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공방은 여전히 뜨겁지만, 미래까지 예상하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암호화폐 생태계와 블록체인 기술을 외면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따져봤으면 한다. 정부가 애써 외면하더라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생태계가 사라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생태계 안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막고, 생태계 안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게 정부가 할 일이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암호화폐공개(ICO)와 암호화폐 투자를 증권법으로 규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몸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라는 신기술을 경험해 보지 않은 미국 정부가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과 산업을 키워보려는 의지를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세계가 일제히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리 정부도 더 이상 암호화폐를 외면하면 안 된다. 정부가 앞장서 암호화폐의 신뢰를 깎아내리고, 이미 존재하는 투자자를 없는 존재로 치부하면 피해만 키우게 된다.
암호화폐에도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용하고, 잘못한 기업이나 투자자는 벌줄 수 있는 기본 규칙부터 만들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디지털뉴스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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