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쌓인 물량 보면 한숨만..." 택배기사는 고달프다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4 13:38

수정 2018.06.14 13:38

[fn 스포트라이트-일상 속 갑질] <6> 폭언·격무에 노출된 택배기사
택배기사 10명 중 6명이 욕설 들어 
물품 설치 강요받기도 
하루 12시간 근무는 기본
건 당 800원 낮은 수수료만 챙겨
국토부, 택배기사 처우 개선 나서
전문가들 "본사 직고용으로 해결해야" 
택배 분류작업 도중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해결하는 택배기사 모습./사진=택배노조 제공
택배 분류작업 도중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해결하는 택배기사 모습./사진=택배노조 제공

"쌓인 물량을 보면 투표는 배부른 소리입니다."
선거 날에도 어김없었다. 지방선거로 법정 공휴일인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빌라 단지를 돌면서 택배 물량을 나르고 있는 김모씨에게 6.13전국동시지방선거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그는 "정리해둔 물량을 나르느라 아침부터 정신없다"며 "선거날인 만큼 빈집이 없어 물량 처리하기엔 오히려 괜찮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날 김씨는 여러 집에서 핀잔을 들었다. 휴일에 왜 문을 두드리냐며 말이다.
그는 "초반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는 적응이 됐다"며 전했다.

택배기사는 언제나 고달프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고객에게 수시로 욕설을 듣는가 하면 택배 물품 설치를 강요당한다. 오전부터 물품 집하를 시작으로 하루에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린다.

■"욕설에서 물품 설치 강요까지..."
14일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택배업 현황과 택배기사의 노동실태'에 따르면 택배기사 56.8%는 고객들로부터 욕설 등 폭언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접 폭행을 당한 비율도 6.1%에 달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 택배 수령인은 기사가 "전화기 전원이 꺼져있어 반송합니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그따구로 사니까 택배 XX찌끄러기 인거야" 등 욕설을 퍼부었다.

욕설 뿐만 아니다. 택배 기사들은 자신들의 본업에서 벗어나는 업무까지 요구받는다. 택배노조가 택배기사 3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 중 22%는 "컴퓨터·세탁기·선풍기 등 배달한 물품 설치를 강요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부당한 요구이지만 거절은 쉽지 않다. 본사에 클레임이 접수될 경우 고스란히 택배 기사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택배회사에서는 고객에게 욕설 등 폭언 시 100만원, 고객 불만 지연 처리 시 5만원, 홈쇼핑 관련 고객 불만 발생 시 5000원 등의 페널티가 규정돼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택배 업무를 맡은 박모씨는 "가전제품을 배송할 때 설치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건 당 돈을 버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인데도 클레임이 두려워 설치를 돕는다"고 답했다.

연락이 두절돼 택배를 반송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기자 험한 욕설을 퍼부은 택배 수령인/사진=택배노조 제공
연락이 두절돼 택배를 반송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기자 험한 욕설을 퍼부은 택배 수령인/사진=택배노조 제공

■'개인사업자'라서…하루 12시간 격무
택배 기사는 격무에 시달린다. 매일 아침 7시~8시에 출근해 4시간 이상 수작업으로 택배 물품을 분류한다. 점심이 돼서야 본격적인 배달에 나서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일을 끝마친다. 하루 평균 12시간을 근무해 주당 74시간을 할애한다. 차량 유류비·보험료·세금·할부금·페널티 비용 등을 한 달 순 수입은 350만원 안팎이다.

격무의 배경에는 낮은 수수료에 있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와 운송계약을 맺고 배송 건당 수입을 올리는 개인사업자다. 건 당 8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점심을 군것질이나 빵 등으로 해결하는 택배기사는 77.2%에 달했다.

아파도 쉴 수 없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이기에 사정이 생겨 일을 못 하는 경우 사비를 들여 용차(용병 택배차)를 구해야 한다. 용차에는 통상 일당의 2배까지 줘야 한다. 본사에서 주는 수수료는 그대로이니 차액은 택배기사 지갑에서 나간다. 돈을 지급해야 쉴 수 있는 구조다.

택배업은 최근 10년간 평균 13.2%의 신장세를 보이지만 택배 단가는 계속 떨어져 지난해 2248원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택배회사 직접고용이 해결책"
국토교통부는 택배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택배 서비스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택배기사가 고용된 노동자와 유사한 특수형태 노동자라는 점을 감안해 근로조건을 기입한 표준계약서를 작성토록 할 예정이다. 표준계약서에는 초과근무 수당, 휴가 등의 근로조건이 담긴다. 국토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이르면 2019년부터 이를 시행할 계획이다.

택배요금 신고제도 도입된다. 택배요금 중 실제 택배회사와 택배기사에게 각각 돌아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 뿐만 아니라 택배회사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태중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고객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택배회사의 택배기사 보호 체계가 전혀 없다"며 "택배기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휴일 보장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택배기사 처우는 본사 직접 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 터울에서 벗어나 생기는 문제"라면서 "궁극적으로 본사가 택배기사를 직접고용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준형 팀장 구자윤 김규태 이진혁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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