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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4차 산업혁명의 성공조건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4 17:22

수정 2018.06.14 17:22

[여의나루] 4차 산업혁명의 성공조건

필자는 가끔 우리나라가 과연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의 하나로 올라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깊이 느끼곤 한다. 기실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반이 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높여 놓았기에 그만큼 우리의 역량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부와 산업계가 조금만 노력하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탈 수 있고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정부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이런 기대감을 드러내었고, 지금 정부도 혁신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무엇이 필자로 하여금 이런 회의감을 가지게 만들까. 4차 산업혁명의 총아는 이제 모두에게 익숙해져 버린 AICBM이 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서비스, 빅데이터, 모바일 등의 기술들이 새로운 산업을 낳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 돼야 할 '데이터'와 '연결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ICBM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알파고라는 AI 바둑프로그램을 들고와서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AI의 충격을 안겨준 이후 우리나라는 곧바로 AI를 미래 핵심기술 분야로 보고 육성 의지를 불태운 바 있다. 그 결실로 정부와 민간의 투자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연구원 (AIRI)이 판교 테크노밸리에 세워져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이 연구원의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했을 때 김진형 원장이 피력한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데이터 접근성 문제였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의 지원이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결정적으로는 한국에서 어떤 AI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해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AI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나라는 단연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에서 데이터 활용이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용이하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지만 중국에서도 이 문제가 극복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어쩌면 통제력이 강한 중국 정부가 오히려 AI 분야 발전을 위해 이 분야 기업들에 데이터 활용의 문을 적극적으로 열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AI 분야에서 미국, 중국 등에 다소 뒤처진 점을 인식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 중 프랑스 정부의 최근 AI 육성 의지를 담은 빌라니(Villani)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충격적인 고백이 들어 있다. 즉, 이 보고서는 프랑스가 자신들이 가진 AI 역량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이 역량이 과실을 맺으려면 가장 큰 과제가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임을 지적하고,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민간 데이터라도 정부가 나서서 공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성공의 두 번째 핵심 조건인 연결성 부분에서도 우리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들마다 각자 자신의 역량을 키우려 할 뿐 서로의 힘을 합치려는 노력은 없다. 인공지능연구원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큰일을 함께 하려는 기업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진정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이 두 가지 성공조건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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