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살아나는 조선업? 중소형사엔 '남 일'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4 17:23

수정 2018.06.14 17:23

[차장칼럼] 살아나는 조선업? 중소형사엔 '남 일'

10년 전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세계 '톱 클래스'였다. 국내 1, 2, 3위가 세계시장에서도 그대로 같은 순위를 유지할 정도였다. 이전에는 일본이 세계 최고 조선강국이었다. 허허벌판이던 거제에 와서 걸음마도 시작하지 못한 한국 조선사들에 기술을 전수해줬던 일본 조선업체들은 최대 경쟁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쇄빙선, 유조선, 원유저장장치, 해양플랜트 등등 우리 조선사가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만들면 세계 최고였다. 당시 조선업계는 중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20년의 기술격차를 넘어야 한다. 값싼 벌크선(화물선)으로는 국내 조선사를 넘지 못한다."

이 말은 10년 뒤 우리 조선사들의 오만함을 증명하는 사례가 됐다. 일본이 우리에게 따라잡혔듯 우리도 중국에 따라잡힐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 우리 조선사들은 그야말로 손가락만 빨았다. 무분규 노사협상 타결을 자랑했던 조선업계에 파업의 바람이 불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까지 시작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국은 정치적 특성상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렵다. 중국의 물동량은 전 세계 물동량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 세월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이렇게 얘기했다. "국가에서 밀어주고, 자국 내 발주선박만 소화해도 수주량이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 업체들은 국내 조선사의 고유영역이던 고부가가치 선박시장을 넘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국 내 발주에 그치고 있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텃밭을 내줬듯이 언제까지 우리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행히 최근 들어 조선 수주가 증가하고 있다. 아직까지 목돈이 되는 해양플랜트는 되살아나지 못했지만, 다행히 액화천연가스 수송선 발주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최악의 가뭄을 겪은 뒤 2년 만에 결정적 시황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대형사들은 희망을 걸고 있다. 문제는 중형 조선사들이다. 조선업에서는 선수금환급보증(RG)이라는 게 있어야 배를 만들 수 있다. 조선사가 주문받은 선박을 기한 내 넘기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은행들이 발주사에 계약금의 일부인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는 약속이다.

문제는 중형 조선사들에 RG 발급이 까다로워진 지가 한참 됐다는 것이다. 얼마 전 조선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한 전문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는 해외시장 눈치를 봐야 해서 정부가 무턱대고 조선사들을 밀어줄 수도 없고, 국내 여론도 더 이상 혈세를 쏟아붓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적어도 보증을 못 받아 체결한 계약도 날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

가문 땅에 오랜만에 물기가 뿌려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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