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의혹 고발 대신 수사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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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입장 발표
"기존 고소·고발 수사땐 모든 조사자료 제공할 것"
검찰, 수사착수 명분 생겨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대신 추후 진행될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대신 추후 진행될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직 대법원장의 고발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유죄심증'을 드러내 수사 및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체적 규명 작업의 공은 일단 검찰로 넘어갔지만 "형사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특별조사단의 발표를 하루 만에 번복하며 사법부 내 갈등을 유발한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미 이뤄진 고발건 수사시 적극 협조"

김 대법원장은 15일 오후 1시 40분께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더라도,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장 명의나 사법부 차원의 추가 고발 대신 이미 시민단체 등의 고소·고발건이 10여건 가량 검찰에 접수된 만큼 수사가 시작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앞으로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로부터 상고법원 도입에 관한 협조를 얻기 위해 특정 재판을 협상 카드로 삼아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최근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특별조사단이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찾아낸 문건에는 당시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비판적이던 판사나 법관 모임 등을 사찰한 정황을 담은 문건들도 포함돼 있다. 이런 문건 작성을 지시했거나 보고받은 의혹이 있는 양 전 대법원장과 문건 작성에 관여한 법원행정처 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김 대법원장은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전국 법원장 등 고참판사들은 검찰 수사 대신 사법부 자체 해결을 요구한 반면, 젊은 소장파 판사들 사이에선 철저한 조사와 함께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단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법부는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검찰 수사 착수에도 명분… 강제수사 '초읽기'

김 대법원장이 이날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방식보다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일단 진상 규명 작업은 검찰이 떠안게 됐다. 공안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공안 검사를 앞세워 현직 판사 3명을 구속하려 했던 1971년 1차 사법파동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던 검찰로서는 김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로 수사 착수의 명분이 생긴 셈이다.


법조계는 문건 작성을 한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이번 수사가 본격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수사에 '협조'할 뜻을 언급한 만큼 검찰이 통상적인 사건과 달리 압수수색 영장을 실제로 집행하기 보다는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제출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2007년 이명박·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경선 때 고소·고발을 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은 이들의 부동산 등기서류 발급내역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도 영장 집행 대신 임의제출 방식으로 자료를 확보한 전례가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