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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상상력의 뒤안길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8 17:02

수정 2018.06.18 17:02

[윤중로] 상상력의 뒤안길

북·미 회담은 '블랙스완'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해서다. 흰 백조만 백조로 생각했던 전 세계인들은 검은 백조가 나타나자 난리가 났다. 역사적 회담이니, 세기의 회담이니 호들갑을 떤 것도 그런 연유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그래서 인간의 능력 밖이다. 단지 불확실한 확률론으로 미래를 잠깐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습성에 왕왕 빠져 있다. 과거에서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나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현상에는 눈과 귀를 닫는다. 작은 균열이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온다는 생각 자체가 현대사회에서는 금기사항이다. 10세기쯤 관용과 다양성의 중심 지역인 레반트(지중해) 헬레니즘이 찰나에 끝장난 것도 다가올 종교 간 대결에 따른 작은 균열을 예측할 수 없어서였다. 예측 불가능성은 순간적이고 돌발성을 띤다. 역사적 사건들은 불연속적이고, 역사는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자기 기만에 탁월하다. 자기 기만은 역사적으로 순수하고 정교한 형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탈레브는 이런 현상을 '플라톤적 사고'라고 부른다. 복잡한 현실을 뚜렷한 범주로 나눠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을 일컫는다. 불확실성들의 원천을 배제하고 눈에 뻔히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이런 사고에서는 미래에 대한 전망도 극히 제한적이고 불투명하다.

이번 북·미 회담은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경우다. 대북정책은 '압박과 제재'라는 명료한 전제와 가정으로 모든 협상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우를 범했다. 한쪽 방향만 보는 선형적 사고가 빚어낸 결과다. 비대칭의 아름답고 우아한 세계는 여기서 열리지 않는다. 단순한 인과관계만 바라보는 인간의 직관과 이해는 이토록 허술하다. 인간의 기억도 단순한 인과성의 틀에서 작동한다. 보들레르는 인간의 기억을 '팰림프세스트', 즉 이전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을 쓴 양피지에 비유하며 기억의 한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 바 있다.

현실세계의 진단 도구로 절대적 지위를 누리는 가우스적 정규분포곡선 이론은 이런 현상을 추동하고 심화한다. 가우스 이론은 현실에서 극단적 사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성립한다. 쉽게 말해 중앙값에 몰려드는 현상을 표준편차로, 즉 평균적인 것으로 가정한다. 그 외에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또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변수로 간주한다.
평균값에서 북·미 회담은 발생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검은 백조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는 대부분 예상 목록이 아닌 '상상력의 뒤안길에 놓여 있던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보다 현명한 자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림일 것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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