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Big Change] 남북이 만든 평화판… 미국은 앞에서, 중국은 뒤에서 수싸움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0 17:11

수정 2018.06.20 17:11

남북 해빙기 新한반도지도 동북아 ‘그레이트 게임’ 시작
핵심 플레이어 김정은, 文대통령 2번 習주석 3번 트럼프와는 회담 후
북미 핫라인 가동 초읽기.. 석달새 정상외교만 6번
지금까지 승자도 김정은, 한미 스냅백 조건이지만 UFG훈련 일단 연기
사실상 중국이 원하던 쌍중단으로 가는 모양
[Big Change] 남북이 만든 평화판… 미국은 앞에서, 중국은 뒤에서 수싸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판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본격화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인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을 일컫는 '그레이트 게임'은 21세기에 한반도 및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각축전으로 재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27 남북 정상회담 및 판문점 선언으로 퍼스트 무버(선구자)가 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위협을 줄일 기회를 포착했다.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세차례 만남과 김 위원장에게 중국 최고위급 전용기 제공을 통해 가까스로 게임에 합류했다.

그간 북·미 데탕트 국면에서 소외됐던 러시아와 일본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주변 4강이 '정상 국가'를 목표로 비핵화와 경제 개혁, 대외관계의 새틀 짜기를 모색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끌어안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외교 최전선에 나서면서 이 게임의 판을 흔드는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어 향후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美, 후속조치 만전…中, 혈맹 관계 복원 나서

중국은 '혈맹'으로서의 북·중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올 들어 세차례나 김 위원장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이동할 때 최고 지도부가 이용하는 전용기 두 대를 제공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든든한 후원국이라는 점을 전세계에 알렸다. 미국 언론들조차 6·12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승자는 그토록 원하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관철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핫 라인'을 가동하며 정상회담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자신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직통 전화번호를 전달했고 17일 북한 측에 전화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러·일도 외교전…北, 日에 거부감

그간 한반도 해빙무드에서 소외됐던 러시아와 일본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월드컵 개막 행사에 참석 차 러시아를 찾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지난 14일 만나 오는 9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를 거듭 초청했다.

지난달 말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9월 동방경제포럼 등을 계기로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초청한 데 이어 두번째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함께 "러시아는 앞으로도 조선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북·러 경제협력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미 회담 이후 김 위원장을 향해 적극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서도 국제사회에 '대북 압박 유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일본이 김 위원장에게 '구애'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북한이 냉담한 반응을 보여 '재팬 패싱'이 도드라지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8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 치켜세우며 "북한과 일본 간에도 새로운 출발을 해서 상호불신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6일에는 요미우리TV 인터뷰에서 "핵 위협이 없어짐에 따라 평화의 혜택을 받는 일본 등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북지원 문제까지 거론했다.

반면 북한은 일본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 국영 평양방송(라디오)은 지난 15일 논평에서 "일본은 이미 해결된 납치문제를 끄집어내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 획책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일치해 환영하는 한반도 평화 기류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치졸하고 어리석은 추태"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北의 광폭 외교 '유리한 판 짜기'

북한은 주변 열강들을 상대로 숨가쁜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말 1차 북·중 정상회담, 4월 27일 첫 남북 정상회담, 5월 초 2차 북·중 정상회담과 5월 말 2차 남북 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1주일 만인 19일 세번째 중국 방문에 나섰다. 석달 새 6번째 정상외교인 셈이다.

이는 미국과의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믿을 만한 중재자인 한국, 뒤를 받쳐줄 우군인 중국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2012년 집권 이후 북한 밖을 벗어나지 않아 '은둔의 지도자'에 가까웠던 김 위원장이 주변국들과 나름의 '균형 외교'를 추구하며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하기 위한 미국과의 담판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2차 남북정상회담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분명히 전해지면서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 동력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배경에도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중국의 조언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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