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펫 라이프

위정자들이 사랑한 동물, '사슴'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5 17:05

수정 2018.06.25 17:05

사슴·노루·고라니 등 사슴류는 동양에선 영물로 여겨져
개·고양이보다 더 친숙한 동물..한라산 '백록담'은 흰사슴 연못
문 대통령과 사슴 연관짓기도 단종은 유배지서 사슴·노루와 보내..단종의 '장릉' 노루의 한자와 동음
청와대 본관 앞뜰에 나들이 나온 사슴 가족들. 서울대공원에서 데리고 온 사슴을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에 방사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본관 앞뜰에 나들이 나온 사슴 가족들. 서울대공원에서 데리고 온 사슴을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에 방사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위정자들이 사랑한 동물, '사슴'

명나라 황제에 바쳐진 기린. 기린은 중국에서 긴 목 사슴이라는 뜻의 '장경록(長頸鹿)'으로 불린다.
명나라 황제에 바쳐진 기린. 기린은 중국에서 긴 목 사슴이라는 뜻의 '장경록(長頸鹿)'으로 불린다.


십장생(十長生)에 속하는 사슴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위정자와 밀접한 동물이다. 사슴과에 속하는 노루도 예전부터 동양에선 영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뱀비'라는 노루를 키웠다. 그는 개도 좋아했지만 독특하게 노루를 키우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에 꽃사슴을 방사하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서 반입해 방사된 꽃사슴 중에서 새끼사슴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노루와 연관된 이야기도 있다. 1979년 10월 26일 10·26 사태가 일어나던 당일의 일이다. 박 대통령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도고온천 관광호텔로 헬기로 이동해 착륙한다. 이때 관광호텔에서 기르던 노루 한 마리가 갑자기 헬기 있는 곳으로 튀어나와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노루의 죽음과 이날 박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많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화장 본채 앞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노루 '뱀비'와 함께 지난 1948년 봄에 찍은 사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화장 본채 앞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노루 '뱀비'와 함께 지난 1948년 봄에 찍은 사진.


■왕, 대통령과 함께한 십장생

정치권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사슴의 연관성을 짓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의 눈망울이 사슴처럼 순수하고 맑다는 것.

6선 국회의원이고 청와대 정무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여러 대통령을 가까이서 봐온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눈이 사슴처럼 맑다고 자신이 쓴 저서 '대통령'에서 소개했다.

사슴이나 노루는 임금과도 관련이 깊다. 비운의 왕인 단종은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에서 사슴, 노루와 말년을 함께 보냈다. 단종의 죽음과 얽힌 노루 이야기도 있다. 유배지에서 죽은 단종의 시신을 세조는 수습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충신 엄흥도와 그의 아들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고 매장할 곳을 찾아 헤맸으나, 눈보라가 내리치는 엄중설한이라 땅이 모두 얼어붙어 무덤을 파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때 어디선가 노루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눈밭에 앉아 잠시 쉬고 가니, 그 눈 녹은 자리를 파 단종의 시신을 묻었다고 한다. 약관도 채 되지 않아 권력다툼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한 소년 왕의 마지막 길을 노루가 함께한 것이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 임금의 왕릉인 장릉(莊陵)은 노루라는 뜻의 한자어 장(獐)과 동음이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단종이 묻힌 강원도 영월 소재 '장릉' 옆 민가의 노루 벽화.
단종이 묻힌 강원도 영월 소재 '장릉' 옆 민가의 노루 벽화.


훗날 복위된 단종의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조정에서 지관을 보내 장릉의 지세를 살폈는데 실제로 가본 지관들은 엄흥도가 임시방편으로 모셨던 그 자리가 이미 천하길지라는 것을 알고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왕릉의 격식에 맞추어 고쳤다고 한다.

왕릉에 사슴 그림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구려의 고분 무용총에도 두 마리의 사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슴과 노루 등은 왕뿐만 아니라 선비들에게도 친근한 동물로 여겨졌다.

이규보는 과거급제 후 2년간 낙향에 머무르면서 사슴과 벗을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전라도 변산반도에 머물렀는데 '숲의 사슴만이 자신의 벗이다'라고 읊었다.

사슴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白鹿潭)은 흰 사슴 연못이라는 뜻이다. 백록담에서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산신령을 옥황상제가 흰 사슴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백록담이 됐다고 한다.

강원도 영월 소재 단종의 무덤인 '장릉' 인근에 세워진 노루 조각공원.
강원도 영월 소재 단종의 무덤인 '장릉' 인근에 세워진 노루 조각공원.


■구석기 주거지에 가장 많은 사슴뼈

긴 목의 사슴으로 불리는 동물도 있다. 바로 기린이다. 공자가 태어날 때 공자의 어머니가 기린이 나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자가 죽을 때도 나타나 마차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기린을 타고 승천했으며, 그 때문에 고구려인들은 옥으로 된 채찍을 주몽의 무덤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기린은 중국 명나라 때 정화(鄭和)가 아프리카에서 기린을 데리고 왔는데, 명나라 황제인 영락제가 그것을 보고 전설상의 기린이라고 믿기도 했다. 이 이름이 뒤에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으나 정작 중국에서는 기린을 현재 긴 목 사슴이라는 뜻의 '장경록(長頸鹿)'이라고 부른다.

기린의 전설은 중국인들이 사슴의 한 종류인 사불상(四不像)을 보고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춘추에서 공자가 직접 '기린이 잡혔다'라고 서술한 점으로 보아 기린이 예전에 있었다가 멸종한 동물일 수도 있다고 한다.

현대에는 개와 고양이가 주된 반려동물이지만 사슴, 노루, 고라니 등 사슴류 동물만큼 옛 조상들과 친숙한 동물도 드물다.

사슴은 아시아 지역에서 개보다도 더 친숙한 동물인 것으로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확인됐다.
구석기 시대 주거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동물 뼈는 사슴이었다. 개의 뼈도 간혹 발견됐지만 사슴 뼈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사슴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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