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

20년쯤 전 처음 중국 출장길에 낯선 장면을 봤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차단기를 올려주는 사람이 서 있었다. 차가 다가가면 사람이 차단기를 올려주고 차단기를 통과해 요금소 직원에게 요금을 낸다. 그리고 10m쯤 가면 또 사람이 차단기를 올려준다. 톨게이트 요금소 하나에 직원이 세 명씩 배치돼 있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 설명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해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신업업에 급히 규제를 도입해 위축시키지 말고 포용력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위챗(가입자 9억의 중국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줬고 대규모의 취업을 이끌어냈다"고 실제 성공사례를 들었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나 화웨이, 텐센트 같은 신산업의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이들 대기업은 매년 수천억원씩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을 발굴해 또 다른 성공의 기반을 만드는 데 쓴다.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기다려주는 방식으로 산업을 지원한다. 이런 시스템을 갖췄더니 중국 스마트산업과 공유경제는 새로운 일자리를 쏟아낸다. 중국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톨게이트에서 차단기 올려주는 직원을 배치해 억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없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요금소 완전 무인화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러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눈에 띄는 이유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20년 전 중국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입맛이 쓰다.

일자리가 참 어려운 숙제다. 올 1월까지만 해도 한달 30만명을 넘던 취업자 증가 숫자가 2월부터 10만명 선으로 낮아지더니 5월에는 7만명대로 추락했다. 숫자도 문제지만 질은 더 문제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꿈꾸며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고 하소연한다.

이 정도라면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속도로 요금소의 직원을 유지하면서 일자리 숫자를 늘릴 게 아니라 무인정산 시스템을 제값 주고 개발해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한화생명이 운용하는 스타트업 지원사업이 있다. 강남과 여의도에 둥지를 틀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한곳에 모아줬다. 법률이나 세무·회계 같은 업무지원도 하지만 스타트업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대기업과 한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나 아이디어를 의논하고, 바로 사업화할 수 있는 협업구조란다. 협업시스템 아래 벌써 수백명의 고용이 한 건물에서 이뤄졌다. 스타트업들은 이곳에 입주하고 싶어 줄을 서고, 미국 컬럼비아대 MBA과정에 성공사례로 소개도 됐다고 한다. 대기업이 참여하고 스타트업이 협력하는 협업구조 위에서 산업을 키우면 젊은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시범케이스다.


청와대가 일자리수석을 교체했다. 새 일자리수석은 대통령의 일자리 현황판에 숫자만 채워넣지는 말았으면 한다. 대기업·스타트업·정부가 하모니를 이루는 일자리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디지털뉴스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