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막오른 '주52시간' 시대] 회사는 PC 끄고 직원은 커피타임 줄이고.. 긴장한 산업현장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1 17:08

수정 2018.07.01 17:08

휴식·외출 등 제외시간 도입.. 비정규직 3교대 편법 배치
정유·석화 등 일손 태부족.. 탄력근로제 1년 확대 요구
1일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점포 개점시간을 현재 오전 10시30분에서 오전 11시로 변경한다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이번 영업시간 변경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현 기회 제공을 위한 것이다. 사진=김범석 기자
1일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점포 개점시간을 현재 오전 10시30분에서 오전 11시로 변경한다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이번 영업시간 변경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라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현 기회 제공을 위한 것이다. 사진=김범석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1일 시행됐지만 첫날이 휴일이어서 별다른 혼란은 없었다. 다만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들이 불거질 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긴장 속에 하루를 보냈다.
또 아직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기업들의 경우 동종업계 내 동향을 점검한 후 보완책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산업계는 국회가 현재 최대 3개월로 한정돼 있는 탄력근로제만이라도 여타 선진국처럼 1년까지 늘려주길 바라고 있다.

■'제외시간'을 아시나요?

1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기본 주 40시간(최대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근무문화에 대변혁이 시작됐다. 300인 이하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동종업계의 동향에 따라 미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검토하는 기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근로시간 단축에 혼선을 빚는 경우도 많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에 근무하는 김 모 대리는 "인사팀에서 바뀌는 근로제도에 대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단속까지 하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6시에 퇴근하라는 방송이 나오면 스스로 퇴근 처리하고 그대로 남아 일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김 대리가 일하는 기업은 'PC오프제'를 도입한 곳이다. 하지만 PC오프제는 무용지물이다. 김 대리는 "시간이 되면 PC가 꺼지긴 하지만 다시 부팅하면 전원이 들어오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제외시간'이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휴식이나 외출 등으로 근무하지 않는 시간을 파악해 보다 촘촘히 근로시간과 인건비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점심시간을 초과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해 일손이 급한 조직에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탓에 오히려 월급이 줄어들기도 한다. 대기업 B사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근무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연간 목표 업무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제외시간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커피 시간, 흡연 시간까지 감시당하는 기분"이라며 "쉰 만큼 일하라는 식이지만 무료로 야근 봉사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이란 정책목표와 달리 비정규직만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한 디스플레이 업체 설비보수를 담당하던 직원들은 법 시행 전 타 부서로 발령이 났다.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 업체는 기존 정규직이 2교대로 맡았던 설비보수 업무를 비정규직 3교대로 대체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늘려야

정부가 유연근로제를 권장하면서 기업들도 탄력적인 인력 운용에서 해법을 찾고 있지만 일부 기업에선 이조차도 상사 눈치를 살펴야 한다. C사에 근무하는 워킹맘 박모씨는 "선택적근로시간제를 활용해 출근시간을 늦췄더니 같은 팀 임원이 '젊은 사람들이 출근을 늦게 한다'고 은근히 눈치하더라"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유연근로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보상휴가제 등 총 5가지다. 이 중 탄력근로제는 노사 간 서면합의에 의할 경우 3개월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3개월 이상 집중근로시기가 필요한 연구개발(R&D) 직종이나 3~4년에 한 번씩 최소 주 84시간이 필요한 대보수를 해야 하는 업계에 3개월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신차 개발에 나서는 자동차기업이나 정유.석유화학업체들은 국회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늘려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국내 빅4 정유사 중 하나인 D사 관계자는 "다행히 올 상반기 대보수를 마무리해 앞으로 3년 정도 시간을 벌었다"며 "다른 업체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판단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회가 탄력근로제 기간을 1년 단위로 확대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산업계의 이 같은 요구에 뒤늦게나마 반응하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만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김경민 성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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