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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노동시간 단축, 과로사회 탈출의 시작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1 17:59

수정 2018.07.01 18:45

[차관칼럼] 노동시간 단축, 과로사회 탈출의 시작

#1. 20대 회사원 A씨는 음악페스티벌에 매년 개근하던 열혈 음악팬이지만 취업 이후로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는 야근과 특근 탓에 표를 예매해놓고도 페스티벌 당일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2. 40대 맞벌이 부부 B씨와 C씨는 초등학생 자녀와 야외 나들이를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주중에는 야근.회식으로 서로 만나기가 어렵고, 주말에는 수시로 특근에 남는 시간은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여가(餘暇)'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동화·분업화에 따라 노동시간이 감소하면서 여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한 휴식 혹은 잔여시간의 시각에서 접근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로 대표되는 흐름은 내 삶을 바꾸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적극적인 의미의 여가에 주목한다.

이는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소득이 행복감을 증가시켜주지만 절대빈곤 단계를 넘어서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소득 이외에 다른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노동시간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가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 5월 발표한 '문화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삶의 행복을 찾으려면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개인이 이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2016년 국내기업 임직원 4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한국 기업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상습적 야근'을 제기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여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4725명의 응답자가 자신의 여가생활에 불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부족(51.5%)을 꼽았다.

7월부터 시행된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은 이런 우리 삶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쳤던 삶'에서 회복하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다. 당장은 과로사회에 익숙해져 있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을 때 여러 논란 속에서도 우리 삶의 리듬이 그에 맞춰져 갔던 것처럼 이번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역시 '일할 때 집중해서 일하고, 놀 때도 확실하게 노는' 삶의 리듬이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주어져도 '잘 노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일 야근을 하다가 어느 날 하루 정시퇴근이 가능해졌을 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당황한 경험을 가졌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노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선 집 주변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운동을 좋아한다면 평일 10시까지 운영하는 전국 180여개의 국민체육센터를, 문화예술을 좋아한다면 가까운 공연장이나 문화센터를 방문하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전국 19개의 국립박물관·미술관 역시 수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한다. 또 510개의 공공도서관은 주중에 밤 10시까지 열려 있다.

좀 더 멀리 떠나고 싶다면 가족과 함께 9월의 무주반딧불 축제, 10월의 진주남강유등축제나 김제지평선 축제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차분히 사색하는 시간을 원한다면 '2018 책의 해'를 맞아 그동안 관심 있었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전국 곳곳의 '심야책방'을 찾아 마음이 통하는 책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많은 국민이 문화와 스포츠, 여행을 통해 '쉼표 있는 삶'을 누리게 되길 기대한다.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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