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특별기고] 한·러 산업기술협력, 새 역사의 시작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1 17:59

수정 2018.07.01 18:44

[특별기고] 한·러 산업기술협력, 새 역사의 시작

우리 국사 교과서에 '러시아'라는 국명은 언제 처음 나올까. 기억이 맞다면,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가 처음 등장한다. 이후 러시아는 러일전쟁, 사할린 강제징용 등 주로 우리나라의 어두운 시기에 등장한다. 과거 냉전 시절에는 서방 세계에 맞서는 '차가운 동토의 먼 나라'쯤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렇게 어두운 면으로만 기억할 나라는 아니다. 오히려 산업에 있어서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2억8000만명의 거대 시장인 독립국가연합(CIS)의 중심이며, 항공·광학·바이오 분야의 탄탄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기초과학 역시 강하며, 천연자원 보유는 경쟁 상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가 기술을 통해 자국 산업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2015년에 수립한 국가기술혁신전략(National Technology Initiative·NTI)이 이런 러시아 움직임에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의존형 국가에서 탈피하고, 수입의존 품목의 국산화를 통한 미래 신시장 창출을 목표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리는 기술을 통한 신시장 창출에 있어 최적의 파트너다. 한국은 러시아의 원천기술과 결합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응용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와 함께 논의되는 남·북·러 삼각 협력을 통하면 러시아의 숙원인 극동 개발에 날개를 달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러 기간 중 한.러 비즈니스 포럼의 기조 연설을 통해 2020년까지 300억달러 교역, 100만명 인력 교류라는 한·러 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교역을 증가시키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기술협력을 통한 서비스.투자와 교역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로 한·러 간 서비스.투자 분야의 FTA 협상에 기술협력 분야를 포괄함으로써 기술협력을 통한 교역확대의 큰 틀이 갖춰지게 됐다.

이에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6월 22일 한.러 간 상호보완적 기술협력을 위해 러시아의 산업기술 관련 기관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러시아의 NTI전략과 우리의 5대 신산업 전략을 중심으로 동반성장이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러시아 혁신기업재단(FASIE)과는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러시아벤처컴퍼니(RVC)와는 기업 지원 및 사업화 지원 등의 협력을 추진할 것이다.

상호보완적 기술협력이 가시화되면 우리 기업이 보유한 세계 수준의 제조·생산관리 능력이 러시아의 원천기술 역량과 결합해 양국은 새로운 시장의 주인공 자리를 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보통신기술(ICT)과 러시아의 기초과학 역량의 결합, 러시아의 국방 기술을 활용한 우리 제품의 고도화 등 무궁무진한 협력 가능성이 존재한다.

KIAT는 러시아의 산업기술 주요 기관과 협력을 시작으로 양국 기술협력이 서비스 투자, 교역 확대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분히 준비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만드는 남·북·러 삼각협력, 한·러 기술협력이 만드는 양국 산업 발전 등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러시아는 기회의 이름이자, 동반 번영의 상징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