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탈원전 정부 '사우디 승전보'를 기대한다

"그렇게 희망한다. 낙관적이다." 이 말대로 되긴 했으나 개운치 않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은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우디 원전의 쇼트리스트(예비사업자 명단)에 한국이 포함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빈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인 알 팔리는 우리의 원전 수주 접촉창구로 공을 들이는 인물이다.

사우디는 오는 2030년까지 총 20조원 규모의 원전 2기(총 2.8GW)를 건설한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20여년간 원전 16기를 짓는다는 큰 그림이다. 지난 1일 발표된 사우디 원전 예비사업자에 우리나라(한국전력)와 미국(웨스팅하우스), 중국(중국광핵집단), 프랑스(프랑스전력공사), 러시아(로사톰)가 모두 들어갔다. 쇼트리스트가 통상 2~3개사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협상 주도권을 쥐고 경쟁을 붙이겠다는 사우디의 속셈이 노골적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3개국 정도로 봤는데 아쉽다"고 했다. 대형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금융 조달)에 정통한 관계자는 "중동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 달라졌는데, 수주 경쟁을 세게 붙여 가격을 원하는 수준까지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가격과 수주 협상에서 가장 거칠다. 예비사업자를 5개나 선정한 것도 가격을 쥐어짜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우디 원전은 원전 수주 자체를 넘어 중동의 질서와 연관된 '빅 게임'이다. 사우디는 미·중·러·프와 안보·외교 관계가 얽혀 있다. 사우디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이다. 석유·가스 등 에너지패권에선 경쟁 관계다. 또다른 '중동 맹주' 이란과는 적대적이다. 이란은 핵 협정을 일방 파기한 미국에 대항해 중국, 러시아와 부쩍 가까워지고 있다.

미.중.러.프는 내로라하는 원전 강국들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로 강점과 약점이 있다. 사우디의 우방국 미국은 우라늄 농축 허용을 대가로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가격경쟁력이 좋고, 영국에서 원전을 수주할 정도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기술신뢰도(원전 안전성)가 충분치 않다. 러시아도 정부의 전폭적 지원 하에 원전 수출 의지가 강하다. 프랑스는 유럽 원전을 지탱하는 유일한 국가다. 그러나 프랑스가 건설 중인 핀란드 원전 건설비용이 당초의 3배로 늘어날 정도로 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사막 환경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원전 수주는 액면 그대로 되지 않는다. 변수도 많고, 한.미.러.중.프 간 여러 경우의 수가 가능한 합종연횡도 예상된다. 한전은 단독 수주가 어렵다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동반 진출하는 '플랜B'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에게 유불리를 떠나 본 게임은 시작됐다. 원전 수주는 우리 원전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사업 주체가 한전인지, 한국수력원자력인지를 따지는 비생산적인 경쟁을 할 때가 아니다.
국익을 위해 정부와 한전, 한수원 및 원전 관련 수많은 기업, 금융 등이 '팀코리아'로 움직여야 한다. 미.중.러.프를 제치고 사우디 원전 수주의 승전보를 '탈원전' 정부가 반드시 써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