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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의 함께 살기] 630조 국민연금 이래도 되나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3 17:11

수정 2018.07.04 07:37

[강문순의 함께 살기] 630조 국민연금 이래도 되나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국민연금이 결국 기금운용본부장(CIO) 재공모에 나섰다. 올초 CIO 공모에 착수해 후보 16명을 8명으로, 다시 3명으로 추렸지만 5개월을 허송세월했다. 11개월째인 CIO 공백은 재공모 절차를 고려하면 1년을 훌쩍 넘기게 된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시장 전문가'를 서둘러 찾겠다고 했지만 빈말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지난주 채준규 주식운용실장까지 해임했다. 해임 배경은 적폐청산의 연장선상으로 알려졌다.
채 실장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기금운용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국민연금 CIO 밑에는 주식·채권운용 등 8명의 실장이 있지만 기존 공석이던 해외대체투자실장에 이어 주식운용실장까지 해임되면서 두 자리가 비었다. 남아있는 6명의 실장 가운데 3명이 CIO와 주식운용실장·해외대체투자실장 빈자리를 겸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실제 투자를 담당하는 운용직이 해마다 20~30명씩 떠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러니 정상적인 투자가 이뤄질 리 없다. 올해 1.4분기 국민연금 수익률은 마이너스 0.21%다. 원금을 까먹었다는 얘기다. 세계 6대 연기금과 비교해도 수익률은 꼴찌다. 최근 5년(2012~2016년)간 국민연금 평균 수익률은 5.18%로 캐나다(12.24%), 네덜란드.노르웨이(9.32%)의 절반 수준이다. 투자업계에서는 "CIO 대행 체제에서 누가 책임을 지고 과감하게 투자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국민연금 CIO가 어떤 자리인가. 2100만명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 630조원의 최후 보루다. 가뜩이나 국민연금 적립금은 2060년에 바닥을 드러낸다. 인구고령화로 걷히는 돈은 줄고 나가는 돈이 많아서다. 이 돈을 굴리는 CIO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연금 CIO 자리는 빛 좋은 개살구다. 대부분의 전임 CIO들이 정치권의 외압으로 불명예 퇴진한 데다 민간에 비해 보수도 턱없이 낮다. 공직자윤리법상 3년 재취업 금지와 길어야 3년(2+1년)인 임기도 걸림돌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CIO 자리의 무게에 비해 자율성과 독립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는 사회적 책임투자, 스튜어드십 코드 등 재갈까지 물리려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의 정치적 외압이 유독 심하다. CIO는 균형 잡힌 시각에서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운용원칙은 첫째는 원금을 지키는 것이고 다음이 수익률이다. 이참에 정부는 세계 3대 연기금에 걸맞은 새 CIO를 뽑아야 한다. '연못 속 고래'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탁월한 전문성과 세계적 안목은 기본이다. 적절한 보수와 성과에 대한 보상, 전문성을 발휘할 여건도 만들어줘야 한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1%만 높여도 수익금은 6조원이다. 수십억원 더 주고 1조원을 벌면 충분히 남는 장사다.
20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30여년 직장생활을 하며 매달 꼬박꼬박 넣어온 국민연금이 흔들리면 정권으로서도 큰 부담이다. 국민연금은 정권사업을 위해 헐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CIO는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의 입김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전문기자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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