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하루하루가 전쟁' 병원 응급실, 욕설·고함에 맞기까지

지령 5000호 이벤트

환자·보호자와 실랑이 다반사.. 취객 통제 안돼 골칫거리
의료진 폭행 처벌 강화해야

"아이X 안 찍는다고! 자꾸 건드리면 가만 안 놔둔다!"

지난 7일 토요일 저녁 11시 20분경 서울 영등포구 A병원 응급실서 한 50대 만취 남성이 갑자기 고함을 쳐댔다. 술을 마시던 중 머리를 부딪혀 피가 나자 주변 신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남성이었다. 한 당직 레지던트가 치료를 위해 CT(컴퓨터 단층촬영)를 권유하자 해당 남성은 '돈 들어간다', '(치료를 명목으로)장사하려 하냐'고 거부하면서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 와중에 남성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남성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연신 침만 뱉어대자 '어휴'하고 짧게 한숨을 내쉰 레지던트는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의료진이 "아저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치료를 받으시든가, 싫으시면 보호자 불러서 귀가하셔야 해요"라고 말하자 다시 응급실은 고함으로 가득 찼다. 이 남성은 "XX, 아 좀! 저리 가라고!"라며 막무가내로 팔을 휘둘렀다.

레지던트가 몸을 재빨리 뒤로 젖혀 남성의 팔에 맞지는 않았지만 자칫 폭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환자를 기다리고 있던 몇몇 보호자들은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의료진은 멀찍이서 팔짱 낀 채 남성을 바라보며 인상만 찡그렸다. 결국 청원경찰관과 의료진이 어렵사리 연락한 보호자가 오고 나서야 남성은 진정된 상태로 진료를 받았다.

레지던트 조모씨는 "매일이 전쟁이다. 예전에는 한 선배 의사가 응급실에서 환자로부터 뺨을 맞는 걸 직접 본 적도 있다"며 "그런 일이 발생하면 괜히 봉변 당할까봐 적극적으로 진료하지 못하고 위축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일부 시민의 온갖 욕설과 폭행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틀간 찾은 응급실은 일부 환자와 보호자의 온갖 고성이 오가면서 때 아닌 '전쟁통'을 방불케했다.

지난 8일 일요일 자정 서울 서대문구 B병원 응급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12순찰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한 30대 한 취객 남성은 "눈이 아프다"며 진료 접수를 요청했다. 병원측 접수자가 "눈은 여기서 진찰이 어렵다. 다른 병원을 알아봐드리겠다"고 답하자 남성은 "왜 진찰이 안 된다는 거냐. 이게 병원이냐"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남성은 욕설을 내뱉으며 "그럼 병원 문을 아예 닫아라", "의사라고 잘난 척하지 마라"며 5분간 고함을 지르다 그대로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응급실 바깥 대기실에서는 보호자간 말다툼도 벌어졌다. 간밤에 구급차에 실려와 치료를 받던 한 고령 환자의 보호자들이었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당신이 제대로 못 돌봤다", "니가 치료 책임져라"며 다른 남성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들은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한 여성 간호사의 부탁도 무시하고 다투다 청원경찰관이 제지하자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청원경찰관 김모씨(45)는 "보통 술에 취해서 그냥 누워 자다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의사에 욕하고 때리는 사람도 상당수"라며 "응급실에 있으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보통 취객이 문제인 경우가 많아 통제가 안 된다. 정말 골칫거리"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응급실 내 폭언과 폭행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한다. 지난 5일 전북 익산 한 병원 응급실에서 40대 만취 남성에게 폭행당한 의사는 코뼈와 이가 부러지고 뇌진탕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응급실 의료진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는 등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