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본업 잊은 국민연금

수익률 뚝뚝 떨어지는데 곁가지 일에 에너지 낭비
해외 나가서 실력 보이길


국민연금이 연일 뉴스에 오른다. 반갑잖다. 기금운용본부장을 뽑느니 마느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느니 마느니 시끄럽다. 국민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정치에 휘말린 결과다. 사실 국민연금은 1년에 딱 한 번만 뉴스를 타면 된다. 한 해 성적표, 곧 수익률을 발표할 때다. 다른 건 다 곁다리다. 아래는 국민연금을 잘 아는 이한테 들은 이야기다. 자꾸 곱씹게 된다.

"예전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현재 연금이 635조원이 쌓였다. 기금운용직이 되면 수조원을 굴릴 수 있다. 민간 자산운용사에선 이런 경험을 쌓기 어렵다. 그래서 민간보다 연봉이 짜도 참았다. 지금은 다르다.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터진 뒤엔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다. 걸핏하면 검찰이 들이닥쳤다. 전임 본부장은 오래전에 잡혀갔고, 최근엔 주식운용실장이 해임됐다. 본부장 자리는 1년째 비었다. 사기가 말이 아니다."

"이런 말 하긴 조심스럽지만, 본부가 전주로 간 뒤 국민연금의 매력이 더 떨어졌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전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짧은 방한 기간에 따로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사례를 국민연금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거래소 본사는 부산이지만 서울에 따로 사무소가 있다. 국민연금도 본사는 전주에 두되 기금운용본부만이라도 서울에 사무소를 두면 안 될까. 국민연금은 '국민' 연금이다. 한 푼이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그 길을 찾는 게 맞다."

"미국 최대 연금인 캘리포니아주공무원연금(캘퍼스·CalPERS)도 본사를 소도시 새크라멘토에 두지 않았냐고? 그건 새크라멘토가 캘리포니아 주도(州都)이기 때문이다. 주 공무원연금이 주도를 본사 입지로 고른 건 당연한다. 그럼 투자귀재 워런 버핏은 왜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를 뒀냐고? 내가 알기론 핵심 투자는 뉴욕사무소에서 이뤄진다."

"정치가 국민연금에 간섭해선 안 된다. 외환위기 때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권해서 된 일이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정하는 최상위 기구다. 예산을 주무르는 재경원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면 연금을 국책사업에 동원하기가 쉽다. IMF는 이를 경계했다. 그래서 기금운용위 지배구조에 손을 댔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보듯 복지부 장관도 정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이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흔히 국민연금을 '연못 속 고래'라 한다. 국내에서 알 만한 기업은 죄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이러니까 정치가 욕심을 낸다. 국민연금을 앞세워 재벌 지배구조를 고치려 들고 총수 일가도 야단친다. 아니,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이 할 일을 왜 국민연금에 떠넘기나. 왜 자꾸 국민연금더러 미국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을 흉내내라고 떠미나.

올 들어 4월까지 국민연금 수익률이 영 시원찮다. 5~6월 주가 하락을 반영하면 상반기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니 뭐니 곁가지 업무에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아니다. 본업에 충실하자. 수익률이 좋으면 온 국민이 박수를 친다. 골목대장 노릇은 충분히 했다. 이제 세계 무대로 나가서 실력을 발휘해 보라.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