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낯선 사람'

어제는 옳았던 것들 오늘은 틀렸다고 할때

연극 '낯선 사람'
시간은 모든 것을 풍화시킨다.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옳지않은 일들이 수없이 많다. 어제는 가치 있었으나 오늘은 낡아빠져버린 것이 되어서 버리는 것이 차라리 나은 신념들도 있다. 그 가운데서 어제의 마음을 지키는 누군가는 점점 스스로가 무가치해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내가 어제 선하다고 믿고 지켰던 것은 오늘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악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또한 누구에게나 온다. 그 순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과연 나였는지 의심하게 되고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연극 '낯선 사람'은 이와 같은 낯설어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어제 옳다고 믿었던 신념들, 그로 인해 했던 행동들이 세월이 지나 부정당했을 때를 이야기한다. 지나친 확신은 왜곡된 환상을 만들어내는데 그 확신이 사라지고 나서야 보이는 이면들을 마주했을 때,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의 대문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미완성 소설 '의화단 운동'을 모티브로 해 임형진 연출이 각색해 재창작한 이 작품이 시작되는 배경은 20세기 초 중국이다.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서양의 군대들이 아시아에서 강탈을 자행했던 시기. 오스트리아 장교 울리히와 중국 의화단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혁명가 천샤오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급조차 시원스레 되지 않는 낯선 이국의 땅에서 울리히에게 의화단 운동을 펼치는 중국인들은 단지 폭도일 뿐이다. 국가의 명예와 정의를 위해 싸운다 믿지만 그가 매일 잡아들여 총살을 집행하는 일은 중국인들에겐 학살일 뿐이다. 오스트리아 군에게 잡혀 다가올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천샤오보를 본 울리히는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로 그를 풀어주게 되고 전쟁 후 돌아온 본국에서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요양원에서 가난하게 늙어간다.

천샤오보에게 오스트리아는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고 수탈하는 침략자일 뿐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오스트리아는 성악가로 성장한 그녀의 손녀가 매일 연습하는 오페라 '토스카'의 배경이 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가 적들과 맞서 지키려 했던 조국과 자국의 문화를 지키려 했던 노력은 무상한 것이 되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혼란을 느끼는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은 현대의 수많은 초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마치 전파가 고르지 못한 환경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예전에는 확실했지만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 사람들은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그리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울리히가 마지막 남은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결단을 하는 모습은 역사에 묻힌 수많은 영웅들과 다가올 미래의 우리의 자화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공연은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